정치인 박근혜의 진가를 나타냈던 그 특유의 ‘침묵정치’가 위협 받고 있다. 지난 3년 동안에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가 전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차기 대권 지지율 압도적 1위의 핵심 정치인이 구제역 재앙이나 북의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같은 중대 사태에 너무 침묵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현안에 너무 적극적이면 대선정국이 과열될 것이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지율 1위이기 때문에 중요 현안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니라는 논리다. 박 전 대표는 1970년대 5년 동안이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서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 이목을 받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8년 후 여의도에 입성해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고 유력 대통령 경선 후보가 됐다. 대통령 후보 자리는 실패했지만 당 지지율은 이명박 경선후보를 앞섰다. 지금은 국회의원 50명을 거느린 집권당 비주류 수장이다. 그가 미래 권력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적어도 이 정도의 지도자는 언제나 국민과 함께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북한 도발 같은 국가 비상사태나 구제역 재앙에서 국민의 분노와 고통과 슬픔을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자세가 국민을 미덥게 만든다는 말이다. 북한을 비난하고 희생자를 조문하는 한 컷짜리 영상만으로 박근혜가 국민과 섞여있다는 느낌을 받을 사람이 몇이겠나, 대선정국의 조기과열을 피하면서 국민과 함께하는 모습이 지금의 박근혜에게 가장 중요하다.

조용히 해군기지의 천안함 사체를 둘러보고, 연평도를 찾고, 통곡하는 축산농민을 만나고, 방역공무원을 위로하는 사진 몇 장이면 박근혜의 함께 아파하는 모습이 많은 국민들 가슴에 와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더 신중하기만을 고집한다면 지난 연말의 대선 싱크탱크를 공개적으로 출범시킨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것은 분명 대선정국을 달구는 불화살이었다. 친이-친박 간 갈등의 문제일 수 있었다. 박근혜 표밭인 대구의 지역민들은 박근혜의 생각이 지역민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공항 문제에 박근혜의 답답한 침묵은 지역민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등을 돌리게 한 면이 없지 않았다. 기회주의적 침묵정치라는 비난마저 나왔다.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고문직을 맡는 것도 강원도의 표를 의식해서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고 보듯이 박근혜가 고문직을 맡고서 강원도에 뺀질나게 다니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다는 신뢰는 바닥이다. 지난 30일 정부발표로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 됐다. 박근혜의 정치행보가 큰 타격을 받았다. 일거에 영남권 민심이 박근혜에게 소외 당하고 배신당했다고 단정 지을지 모를 위기였다.

이를 놓고 박근혜가 ‘오지게 한방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 백지화에 따른 여파에 박 전 대표가 강한 입장을 표명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박 전 대표를 휘감았지만 박근혜는 영남권 사수하는 ‘양날의 검’을 선택했다. 박근혜가 재앙에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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