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개편에 또 적자 우려...자회사 매각까지

지난 6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전력 이사회에서 이사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진행되는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권고한 최종안에 대한 의결여부를 결정했다. [뉴시스]
지난 6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전력 이사회에서 이사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진행되는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권고한 최종안에 대한 의결여부를 결정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전력공사에 위기가 또 찾아왔다. 여름철만 되면 고민거리가 하나씩 늘고 있다. 과거에는 여름철 무더위로 인한 전략량 증가에 따른 대비책 마련이 급선무였다면 이제는 전기세 인하로 인한 재정 확보에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최근에는 자회사 매각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서민들에게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서민층에서는 전기세 인하를 당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역력해 한전의 고민이 늘고 있다. 

 ‘전기요금’이 주가 발목...올 들어 23% 급락
 정부 눈치만 보는 사측, 뚜렷한 대안도 없어


한전의 올해 1/4분기 말 기준 부채는 121조원, 부채비율은 172%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부채가 10조 원가량 불어났다. 부채비율도 약 8%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연결 기준 1조1745억원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4분기에도 6000억원 넘는 적자를 냈다.

주가 역시 내리막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한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올해 초 27.7%에서 지난 3월 15일 29%로 정점을 찍은 뒤 이달 현재 26.49%로 하락했다. 한전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3% 넘게 급락했다. 

더 큰 문제는 올해도 전기세 인하로 재정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 1일부로 7~8월 전기요금을 인하 한다. 앞서 전기요금 누진제 민관TF는 7~8월 여름철에만 누진 구간을 확대해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확정했다.

개편안대로라면 지난해 사용량 기준 전국 1629만 가구가 전기요금을 월 평균 1만142원 씩 할인받게 된다. 이로 인해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2847억 원에 달한다. 초기 투입비용 약 5000억 원이 들어가는 한전공대 설립사업도 정부 측의 지원계획이 확정되지 않고 있다.

자회사 지분 팔아 적자 보전(?) 

결국 한전은 누적적자가 계속되자 최근 자회사 매각이라는 카드를 들었다. 지난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한 사업보고서에서 “부채 감축 및 경영 효율성 향상을 위해 한전기술, 한전산업개발 보유지분 매각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한전기술과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각각 65.77%, 29.00% 보유하고 있다. 한전은 한전기술 지분 14.77%와 한전산업개발 지분 전량을 매각 가능한 지분으로 공시했다.

이를 지난 5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한전은 해당 지분 매각으로 약 1080억원(한전기술 750억원, 한전산업 33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
업계는 이와 관련해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한전이 자회사 지분까지 매각해 적자 보전에 나선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회사가 어려워지면 긴축재정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한전의 경우 오히려 내부 직원들의 처우가 강화됐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엔 한전 직원의 평균 연봉은 8132만원으로 전년과 동일했지만 직원 숫자는 2017년 대비 약 4000명 가량 늘었다. 그 결과 한전의 직원 연봉 총액은 2017년 1조8050억원에서 지난해 1조8335억원으로 올랐다. 통상적으로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대기업이 인력축소를 통한 비용감축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한전 직원 1인당 평균 2000만 원에 육박하는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1년 A등급을 받았을 당시 1인당 평균 1774만원을 받았었는데 기본급 인상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해당 연도와 비슷한 수준의 성과급을 수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부실과 막대한 성과급 지급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충당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더해지는 분위기다.

한전 측은 그러나 자회사 지분 매각 계획이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른 것으로 최근 적자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도 한전은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3차례에 걸쳐 한국전력기술 지분 9%가량을 매각한 바 있다. 증권업계 또한 한전의 자회사 지분 매각이 한전 주가나 펀더멘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료 인하에도 칭찬 조차 못받아   

이처럼 내홍을 겪는 한전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따갑다. 전기세 인하에도 서민들에게 칭찬 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소액 주주들은 실적을 악화시켰음에도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은 한전 이사회를 상대로 배임죄로 고발 예정이다. 

한전 노조 관계자는 "원전보다 LNG는 발전 단가가 2배지만 신재생에너지는 3배"라며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계속 높일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한전 적자 폭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에너지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전기요금 개편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4일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한국전력과 협의한 바도, 인상 요구를 받아들인 적도 없다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일찍이 “2022년까지 요금을 안 올리겠다”고 약속한 데다 내년 4월 총선 표심을 의식해 한전의 전기요금 개편안을 일축하는 분위기다.

한전 관계자는 “연료비가 상승함에도 전기요금이 현 수준에서 유지되거나 연료비 상승분 만큼의 요금 인상이 없다면 한전의 재무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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