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국무총리 차량 일행이 불법 주차된 차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불법 주차하였다는 사실이 보도돼 눈총을 받았다. 한 누리꾼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 따르면, 7월 8일 점심 시간대에 강남의 한 식당 인근에서 “늘 일렬로 대 있던 불법차(차량들)를 경찰들이 와서 다 치웠다”며 “국무총리가 이 곳에서 식사를 한다고 주차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김 총리가 불법 차량들을 치우고 자신의 승용차를 그 자리에 대라고 지시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총리 승용차의 시민 차량 밀어내기와 불법주자 행태는 우리나라 관리들이 아직도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반영한다.

관리는 존귀하고 백성은 비천하다는 권위주의적인 구습에 젖어 있다. 비천한 백성의 차량 쯤은 밀어 내고 그 자리에 존귀하신 총리와 그 일행의 차를 모셔야 한다는 낡고 병든 관료의식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의 사유화(私有化)이며 특권의식의 병적 작태이다.

뿐만 아니라 총리 차의 서민 차량 밀어내기는 이명박 정부의 ‘친 서민 정책’의 허구를 드러내는 단면이 아닐 수 없어 더욱 씁쓸하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친 서민 정책’을 국정의 우선 순위로 내세웠다. 그러나 총리의 승용차가 시민들의 차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뺏음으로써 ‘서민’을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노정 시킨 행태였다.

이명박 정부 관리들이 평소 서민을 정중히 섬긴다는 자세로 임하였더라면, 그런 방자한 무례는 없었으리라 본다. 그들이 말로는 ‘친 서민 정책’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자신들을 존귀한 존재로 군림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최강 지도자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행동을 통해 자신이 평범한 백성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표출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겸손한 자세를 통해 미국이 관존민비 사회가 아니고 민본(民本) 국가임을 실증한다.

2009년 9월 미국인들은 신종 인플루엔자A 창궐로 수백만 명이 감염되었고 6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공포에 휩싸였다. 예방 백신이 턱없이 부족해 미국인들은 서로 먼저 맞으려 서둘렀다. 여기에 미국 보건부는 혼란을 막기 위해 신종 풀루 백신 접종 순서를 결정하였다. 백신 접종 우선 순위는 (1) 임신부, (2) 6개월 미만 영아의 보호자, (3) 병원 및 응급실 종사자, (4) 6개월 이상 아동, (5) 25~64세 중 만성질환이 있는 성인, 등의 순서로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기다리는 순번은 꽤 뒤로 밀려있는 것 같다”며 “나도 가족도 일반 국민 처럼 차례를 기다렸다가 신종 플루 백신을 맞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총리실 같았으면 앞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총리 먼저 백신을 맞게 하지 않았겠나 상상해 본다.

그밖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개인 목적으로 외출할 경우 크라이슬러 리무진을 타지 않고 지엠(GM)이 제작한 스포츠유틸리티(SUV)인 셰비서브어번을 탄다.

그는 2009년 9월 26일에도 이 차를 타고 경광등을 켜지 않은 채 보통 시민들의 차량과 함께 섞여 빨간 신호등 마다 꼬박꼬박 기다렸다. 한 학교에서 열리는 첫 딸인 말리아 양의 축구 경기를 보러가기 위한 길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통령이 행차 할 경우 공무건 개인 목적이던 간에 교통순경들을 길바닥에 줄줄이 대기시키고 요란한 경고등에 야단법석을 떨었을 법 했다.

진솔한 민구주의와 ‘친 서민 정책’은 요란한 구호에서 구현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 처럼 백신 접종을 순서대로 기다리고 빨간 신호등에 멈춰서는 데서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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