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지방분권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자치분권 및 재정분권은 핵심 국정과제였다. 하지만 지방분권 개헌이 무산되면서 문 정부는 법률 개정을 통해 지방분권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월 말 정부가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이다. 하지만 정부안 발표 후 여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발의한 지방자치법개정법률안을 보면 지방분권보다 지방에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법안을 발의해 지방자치를 의심케 만들고 있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압승해 전체 70~80% 이상 광역·기초 단체장을 석권한 여당의 자리 신설은 대선 공신들에 대한 보은인사, 측근 자리보전용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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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공신록 주류는 중앙비주류 지방으로인사적체 해소
- 광역.기초 부단체장 1~2명 늘리고 예산정책관 신설입법 예고

지난 329일 정부의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73일까지 의원이 발의한 지방자치법개정법률안은 총 10건이 발의됐다. 정부안까지 합치면 총 11개의 지방자치법 관련법이 발의돼 행정안전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일단 정부가 발의한 지방자치법이 31년 만에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된 점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주민조례 발안제를 도입했고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기준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내려 폭넓은 주민참여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지방의회에 윤리특별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고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윤리위가 지방의원이 부적절한 언행을 할 경우 징계가 가능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정부안에는 자치단체가 행정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존 법정 부단체장 외에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시도 부단체장 1명 또는 2명을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둘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지방의회의 역량 강화 차원에서 정책지원전문인력제도의 도입 근거를 마련했다.

17개시도 2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400여명 증원

현재 서울시의 경우 박원순 시장 휘하에 정무부시장과 행정 1, 2부시장을 두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2명의 부시장을 더 둘 수 있다. 인구가 천만이 넘는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지사 휘하에는 평화부지사와 행정 1, 2부지사가 있는데 2명을 더 쓸 수 있다. 반면 1000만이 안 되는 시도는 1명의 부시장·부지사를 둔다. 모두 정무직·일반직 내지 별정직 지방공무원 신분이라 국민세금으로 운영된다.

정부가 광역단체장을 중심으로 부단체장을 증원하자 여당 의원들도 기초단체장의 부단체장을 증원하는 법을 바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412일 대표발의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보면 시도지사 부시장·부지사 증원에 있어 인구 300만 이상이거주 면적 15,000이상인 시/2명을 추가 설치하고 시군구 부단체장 정수도 1명 증원하도록 법을 일부 개정했다. 기초단체장 부단체장 2명중 1명은 도지사가 임명하고 1명은 시장·군수·구청장이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100만 이하 인구의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 휘하 부단체장(부시장, 부군수, 부구청장)1명인데 한 자리를 더 늘리고 2명 중 한 명은 시도지사가, 1명은 시장·군수·구청장이 임명하도록 한 것이다. 이 법을 발의한 여당 의원들은 지역별 다양한 행정 수요 증가를 증원 이유로 들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전국 17개 시도에서 20명의 부도지사 부시장이 새롭게 임명된다. 또한 한 기초단체장의 부단체장은 한 명이 늘지만 전체 226개의 시··구가 있으니 226명의 2급 이상 고위직 지방 별정직 공무원이 발생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3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지방자치법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내용은 정부가 예산전문가를 지방의회에 도입하자는 취지에 따라 최 의원은 시도의회에 예산·결산 등 재정운영 관련 사항을 조사·연구·분석·평가하는 예산정책지원기관을 설치하도록 하는 안을 냈다.

구체적으로 예산정책지원기관을 두고 기관의 장과 직원은 지방공무원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17개 시도에 국회의원 보좌진(8, 수행비서 제외)을 기준으로 인원을 보강할 경우 136명의 지방직 공무원이 생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지방분권, 지방자치를 명목으로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것은 지난 지방선거의 압승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중앙권력을 근 10년 만에 재창출하고 지방권력마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장악한 이상 자리를 만들어 측근, 보은 인사를 대놓고 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을 야당에서 보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 결과 전국의 17개 시·도와 226개의 시··구 기초단체장 중 더불어민주당소속 광역단체장 14, 기초단체장은 151명이다. 반면 한국당 대구.경북 2개 광역단체장에 기초단체장 수는 53명에 불과하다.

광역.기초의원 수는 더하다. 전국 광역의원 지역구 의석수 737곳과 광역비례 87명중 민주당 소속 지역 광역의원은 605(비례 47), 한국당은 113(비례 24)이다. 전국 기초의원 역시 전체 2541(기초비례 385)중 민주당 1400(비례 238), 자유한국당 876(비례 133)명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실상 새로 신설되는 광역.기초단체장 부단체장 자리와 예산지원기관에 민주당 소속 내지 성향의 인사들이 갈 공산이 높다. 문 정부로서는 지방선거 실시전만해도 대선 공신자들의 자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2의 허동준 사태? 지방정부 정치야인흡수

대표적인 사건이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의 음주사고다. 허 전 위원장은 2017년 연말 음주사고로 인해 동작을 원외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정치권에서는 음주운전 전력을 개인적 일탈로 치부했다. 하지만 공직 입성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대선 공신들 사이에서는 사고가 이해가 간다는 입장이었다.

민주당에서 원외위원장만 7년을 하고 변변한 직을 얻지 못하다가 정권이 바뀐 이후 공직 진출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인사 적체현상이 장기화되자 다혈질인 허 전 위원장이 술김에 사고를 쳤다는 게 정설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중앙직과 준정부기관, 그리고 공공기관장에 정권재창출 1등 공신부터 챙겼다. 캠코더 인사라는 비판이 비등할 때다. 한 마디로 정치 야인들이나 비주류 인사들이 차지할 자리는 없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권과는 달리 준정부기관과 공공기관장에 포진한 전 정권 인사들을 인위적으로 쫓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임기를 보장해 줬다. 대표적인 인사가 KT 황창규 사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골·진골 출신들만 정부 요직에 들어가고 정치 야인들이나 비주류 인사들은 정권이 바뀌었어도 하염없이 백수생활을 해야만 했다. 10년 만에 잡은 정권에서 백수 생활은 허 전 위원장처럼 다혈질이고 생계형 대선 공신들의 경우 사고를 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시 여권 인사는 2의 허동준 사태가 벌어지면 정권 초기라도 지지율이 급감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방선거 이후다. 전국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뿐만 아니라 광역·기초 의회를 한 정당이 압도적으로 장악하면서 정치 야인들과 비주류 인사들을 위한 일자리가 생겼다.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은 조례를 바꾸거나 기존 정무직·일반직 또는 별정직 자리에 대거 측근들과 대선 공신들로 채웠다. 심지어 자리가 남아돌다보니 경쟁 당 인사들도 민주당 단체장휘하에서 일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일자리가 더 생길 경우 전문 인력도 충원하겠지만 아무래도 정치권 속성상 측근, 보은 인사가 다수를 차지할 것이란 예상이 높다. 한국당의 경우 정부안은 반대한다고 해도 광역·기초단체에 자리를 신설하는 지방자치법 관련 안을 대놓고 반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높아 머잖아 통과될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한편 비슷한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여야가 경쟁하듯 발의해 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법안이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지난 417일 동료 의원 12명과 함께 통장과 이장의 처우개선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통장과 이장은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지방행정의 일선 현장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행정업무를 보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현행법상 통장과 이장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고 해당 기초단체 조례나 규칙에 근거해 활동수당을 지급받고 있다며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 배경을 밝혔다.

궁극적으로 김 의원은 이.통장이 받는 수당을 공무원 보수 인상률 등을 고려해 인상해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업무로 인한 신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한 교통보조금, 미취학 자녀의 양육지원비, 취학 자녀에 대한 장학금 등을 조례에 따라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민주당이 이·통장 처우 개선 관련 법안을 내자 자유한국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박명재 한국당 의원은 530일 같은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 발의 취지와 내용은 엇비슷했다. 단지 한국당에서는 수당을 공무원 보수 인상률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등을 고려해 수당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더 높였고 업무상 상해나 사망의 경우에도 공무원재해보상법에 준해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공헌한 이·통장에 대해 훈.포장을 수여하고 지방세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예산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여당안보다 훨씬 이·통장을 배려한 법안을 발의했다.

·통장 10만여 명 5년간 719억원 선심성 법안도

문제는 비용이다. 전국적으로 이장은 37천 명, 통장은 58천여 명에 달한다. 현재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비로 이.통장 1인당 연 328만 원이 지급된다. 그런데 국회예산처가 김병욱 의원의 요청에 따라 법안이 통과될 경우의 비용을 추계한 결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719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1439천만 원이 소요된다.

10만 이통장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특히 2022년에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민주당의 법안대로 될 경우 이통장은 알아서 민주당 소속 단체장 후보를 지지할 공산이 높다. 가까이 내년 총선에서도 나쁠 게 없는 법안이다. 한국당이 한달 이상 뒤 늦게나마 이·통장 처우개선에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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