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상태 예비역 대장이 군사 기밀을 미국의 군수업체에 넘기고 수십억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이 분노하는 정도가 아니다. 자괴감에 치욕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일반 공무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함부로 누설할 수 없을뿐더러 사익을 위해 이용하지 못한다. 항차 적과 대치하고 있는 군에 있어서랴.

그런데 김씨는 하물며 군 총수 자리에 있던 신분으로 옛 직위를 이용해 우리 공군의 무기 구매계획 등 군사기밀을 수집, 12차례 걸쳐 미국 군수업체에 유출한 대가로 25억원을 받았다. 그러고도 사건이 터지자 “문제된 내용이 인터넷 등에 공개된 자료이며 군사기밀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미국업체는 이미 인터넷에까지 공개된 자료를 25억원이나 주고 사는 바보였던 모양이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군의 대장 계급은 모든 전, 현역 군인이 우러러 보는 군 권위의 상징이다. 그만큼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예비역 대장에게는 장관급에 해당하는 연금 지급을 하고 있다. 때문에 김 씨의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행위는 더욱 공분을 일으킨다. 현행 형법이 적(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만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돼있는 것이 유감이다.

군사기밀 누출은 무기 도입의 군수 관련 업무나 군비확장 등의 군사기밀을 다루던 군 간부들이 전역 뒤 방산업체에 취업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관련법규 보완이 시급하다. 군의 전략이나 무기 도입 관련 기밀을 빼내 군수업체에 넘겼다가 처벌 받은 수가 지난 6년간 무려 50명에 달하지만 이 중 한사람도 실형을 선고받지는 않았다. 적국이 아닌 미국 군수업체에 기밀을 팔았기 때문에 간첩죄가 아닌 군사기밀보호법을 적용해서였다.

고위 예비역 장성들의 막강한 힘은 사관학교 기수를 발판으로 현역들을 압박하는 수준이다. 국방정책은 물론 군 인사에까지 개입한다. 과거 군사정권의 유습을 못 버렸다. 고령이란 이유로 불구속 기소된 이번 김상태씨가 빼낸 정보 가운데는 북한 내부전략 목표를 정밀 타격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 중인 합동원거리공격탄(JASSM)수량 및 예산, 장착 전투기의 배치 장소가 기록된 문서가 들어있다.

이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간첩행위는 모든 나라가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유독 우리만 북한 외에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돼있다. 미국만 해도 군사기밀 누출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최고 종신형에 처하고 있다. 미국은 미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던 재미교포 로버트 김씨가 미국이 수집한 북한 정보를 한국대사관에 넘겼다는 이유로 9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기소돼도 실형을 내리지 않는 우리 ‘군사기밀보호법’은 ‘군사기밀유출자 보호법’이라고 할만하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적발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광범위하게 만연돼 있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군사기밀 취급자에 대해 전역 후 취업제한 조치와 함께 군사기밀 유출 범죄의 처벌을 강화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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