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을 계영배라고 한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실제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약 2.9% 오른 8,590원으로 결정했다. 2009년에 정한 인상률인 2.8%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인상률이었던 10.9%와 비교하면 8% 정도가 낮은 수치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사용자 측과 소상공인, 편의점·프랜차이즈 업계 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반면 노동자 측은 가장 적은 인상폭에 발끈하고 나섰다.

한숨을 내쉬는 측은 인상 폭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2년간 30% 가까이나 최저임금을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기존 인건비 부담이 임계점에 도달했고, 인상 폭이 낮다고는 하지만 최저임금의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동결이나 삭감이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체감적으로도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오른 터라 소폭의 상승이라도 실질적인 부담은 더 크게 느껴지는데 업종별규모별 차등적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반쪽짜리 최저임금이라고 주장한다. 경총은 최저임금위원회가 공약한 제도개선전문위원회를 가동해 업종, 규모, 지역별 차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 참사”, “소득주도 성장 폐기 선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경제 공황 상황에서나 있을 법한 실질적인 최저임금 삭감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노총도 결국, 최저임금은 안 오르고 산입범위 확대 등 최저임금법만 개악된 셈이라고 반발했다. 여야 3당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놨다.

이번 결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공약은 사실상 지키기 어려워졌다는 평이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려면 남은 2년간 약 8%의 인상률을 유지해야 하지만, 속도조절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내걸고 소득주도 성장만 운운하다 경제를 파탄 냈다는 비판도 거세게 올라와 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매년 인상률을 놓고 씨름할 게 아니라 최저임금 체계전반을 손봐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생각의 힘을 기초로 한 창의력이 강조되고,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등 노동 시간과 물리적인 양 만으로는 노동의 가치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최저임금의 존폐 문제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최저임금체계를 즉시 폐기하기 어렵다면, 외국에서 적용하듯이 업종별, 규모별, 지역별로 차등화하여 적용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만 한다.

또한 노동자측, 사용자측, 정부측 공익위원으로 구성되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기 어려운 구조인 최저임금위원회라는 논의·결정의 주체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로 바꾸는 것도 심도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도 견고하게 밀어붙일 것 같았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실험적 공약의 폐해가 이렇게 심각함을 절감한 시점에, 차고 넘침이 없는 계영배의 지혜처럼 과유불급의 속도조절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임금 근로자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부담은 여전하며 결국 노동자도 반발하는 악순환으로 계영배가 차고 넘쳐서 깨지는 상황이 올까 저어된다. <서원대학교 교수 / 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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