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등장’에 ‘일자리 잃을까’ 전전긍긍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고공농성. [뉴시스]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고공농성.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달 30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기습 고공농성에 돌입한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시위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뙤약볕에 연일 35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스마트 톨링도입 때문에 겪는 일자리 소멸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vs 요금수납원 입장 안 좁혀져···농성 장기화 조짐

최근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 등에 따르면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 노조공공연대 노조, 한국노총 도로공사 톨게이트 노조 소속 노조원 42명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처마덮개 구조물)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수납원들은 앞서 지난달 30일 도로공사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배속을 거부하고,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 속에서 고공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조원 40여 명은 장기 농성 채비도 갖췄다. 집회신고 일자를 지난 5일에서 23일로 연장했다.

이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부당해고 철회하라’, ‘자회사 반대, 직접고용 쟁취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도로공사의 직접 고용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납원들은 도로공사 측이 지난 1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출범시켜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근로자 1500여 명을 사실상 해고했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농성 중 건강 악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도로공사다. 지난 6일 서울 기온이 36도에 이르는 등 7월 상순 기준으로 지난 1939년 이후 80년 만의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살인더위가 지속되자 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얼음과 소금을 전달하는 등 무더위 속 탈진 사태 가능성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수납원 중 한 명은 건강이 나빠져 중간에 내려오기도 했다. 또 수납원들은 피부와 목 관련 질환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가운 햇빛에 바로 노출되고 매연과 까만 먼지를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혈압과 당뇨 등을 앓고 있지만 소지하던 약이 부족해 먹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도 사태 수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 사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스마트 톨링 시행 연기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국토부와 국무총리실과 협의를 해 국정과제(스마트 톨링 도입)를 연기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라며 “201711월 말 (도로공사에) 와서 업무 파악을 해보니 스마트 톨링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사장은 자회사 소속 전환을 거부하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상대로 강온 양면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직접 고용은 없다며 타협 불가의 원칙을 재차 확인하면서도 자회사의 기타 공공기관 지정을 서두를 것이라며 회유책도 내놨다.

그러나 요금수납원들은 농성을 멈추지 않았다. 이 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마트 톨링은 무엇인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급여 인상, 기타 공공기관 지정 등 도로공사 측의 당근책을 뿌리치고, 농성을 풀지 않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스마트 톨링도입에 따른 일자리 소멸의 공포감이 자리 잡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자 지위확인 법정 소송 과정에서 쌓인 도로공사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도 이러한 대립에 한몫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스마트 톨링이란 4차산업 기술을 활용해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량의 요금을 자동수납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톨게이트를 오가는 차량 10대 중 8대가 이용하는 하이패스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트한 첨단기술의 총아다.

톨게이트 이용 차량이 100km 이상 고속으로 주행하더라도 번호판을 정확히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속도를 30km 이하로 낮춰야 인식률이 높아지는 하이패스와는 급이 다르다.

차로 사이에 중간 구조물도 더 이상 둘 필요가 없다. 달리기만 해도 전기차가 충전되는 도로를 비롯한 이른바 스마트 하이웨이 기술의 일부다. 고속주행하는 차량을 정확히 인식하는 영상인식 기술, 이 기술로 수집한 빅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하는 컴퓨팅이 뒷받침돼야 한다.

스마트 톨링은 이르면 내년 중 시범서비스를 거쳐 오는 2022년 이후 톨게이트에 적용될 예정이다.

톨게이트 조합원들이 도로공사 측의 스마트 톨링 도입을 우려하는 배경은 일자리에 미칠 충격 때문이다. 첨단 영상 장비, 빅데이터 처리 기술 등으로 무장한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요금수납원들이 그동안 담당해 온 단순 캐셔 업무가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100km 이상 속도로 내달리는 차량의 번호판을 순식간에 읽고,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해 요금을 매기는 이 장비를 사람의 힘으로 당할 재간이 있냐는 게 요금수납원들의 하소연이다.

물론 도로공사 측은 수납원들의 공포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개인정보 문제, 스마트 톨링을 뒷받침할 영상 인식 기술 등 두 가지 걸림돌이 아직 해소되지 않아 일자리 소멸을 운운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스마트 톨링이 오는 2022년 이후 도입돼도 신상 정보 노출을 꺼리는 고속도로 이용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일반요금 차로는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공사 측의 해명이다.

또 외국의 사례에서 보면 요금을 체불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게 돼 전화 독촉 작업 등 요금징수를 위한 인력이 새로 필요했다. 스마트 톨링 체계가 되면 요금수납원은 해고가 아니라 다른 직종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금수납원 측은 자회사의 구조가 용역 형태와 같기 때문에 그동안의 처우나 고용형태 또한 같아질 수밖에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고유 업무가 요금수납이라, 스마트 톨링을 도입하면 요금수납원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것이다. 종합적으로는 도입을 연기하더라도 스마트 톨링이 국정과제로 제시되는 등 수납원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회사로 가면 손쉽게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도로공사와 요금수납원 간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타협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 요금수납원들의 고공농성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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