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5일 동안 요란하게 휘몰아쳤던 안철수 돌풍을 지켜보며 한국인들의 얄팍한 냄비 근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돌풍은 지난 1일 밤 한 인터넷 매체에 그가 서울 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설이 나돌면서 시작됐다. 그 후 5일 만인 6일 오후 그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서울 시장 후보로 지지한다고 밝힘으로써 막을 내렸다.

5일간의 돌풍은 여론조사와 지식인들의 논평 등을 통해 증폭돼 갔다. 여론조사 결과 안 원장의 서울시장 지지율은 55.4 %,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24.6%, 박원순 상임이사 9.6% 순으로 나타났다. 안 원장은 차점자보다 두 배나 앞섰다.

주요 언론매체와 학자들은 기사와 칼럼을 통해 연일 안 원장 띄우기에 나섰다. 그를 가리켜 ‘유쾌한 반란군’, ‘우리 정치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는 길목’, ‘정치태풍으로 커 갈 잠재력’ 등으로 성급하게 추켜세웠다. 지식인들의 경박한 부화뇌동이었다.

안 원장은 올해 49세의 의과대학 의사 출신으로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성공한 기업인일 뿐이다. 그 외에 검증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들은 그의 시장 출마설과 함께 그를 순식간에 ‘정치태풍’의 핵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만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과 불신에 연유했다.

안 원장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는 참신성에 있다. 기회주의적이며 음습하게 개인의 사욕만 쫓는 기성 세대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 원장이 지난 5일간 드러낸 행태는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언행은 기성세대를 닮았고 참신성을 잃었으며 구태의연했다.

그는 우선 서울대 융합과기대학원장 자리를 맡은 지 3개월도 안됐는데 학기 중에 서울시장 출마설을 뿌렸다. 나도 대학에서 학장과 대학원장을 해 봤지만, 학기 중 교수가 빠져나가면 대학과 학생 모두에게 엄청난 혼란과 차질을 초래한다. 대학을 학기 중에 떠나야 하는 안 원장의 시장 출마 시도는 개인의 이익만 쫓는 짓이었다. 참신하지 못한 처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 원장은 여론지지도가 높아지자 서울시장 후보가 된 것처럼 한나라당을 마구 때리고 나섰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이라고 했다. 기성 야당 정치인 같은 말이었다. 그는 이어 “또 다시 이상한 사람이 서울시를 망치면 분통이 터질 것”이라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이상한 사람”, “서울시를 망친” 사람이라고 몰아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막가는 기성 정치인을 뺨칠 정도의 막말이었다.

그밖에도 그는 “나는 공적 개념을 가진 CEO여서 사회 공헌을 생각하면서 경영을 해왔다. 정치만 한 분, 변호사 하다가 시장하는 분에 비하면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며 자화자찬했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말대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안 원장의 언행은 그가 벌써 겸손을 잃었고 오만해졌으며 3류 기성 정치인을 닮았음을 엿보게 한다. 그에게서 이미 참신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일부 우리 국민들은 검증되지 않은 안 원장을 여론조사를 통해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지식인들은 ‘유쾌한 반란군’이라고 부추겼다. 얄팍한 냄비 근성을 드러낸 흔적들이었다.

지난 날 우리 국민의 냄비 근성은 ‘이상한 사람’을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뽑았고 나라를 뒷걸음질치게 했다. 안철수 돌풍 5일을 지켜보며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면 먼저 얄팍한 냄비 근성부터 벗어나야 함을 통감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업자를 하루 아침에 ‘유쾌한 반란’, ‘정치태풍’으로 띄우는 소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