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해를 시작한지 어제만 같은데 벌써 올 추석 연휴를 맞았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 우리국민들 세월조차 못 느꼈을 것 같다.

올 상반기 나라정치는 민생 현안과는 상관없는 일들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하반기 국내 정치는 내년 4월 총선에 따른 물밑 공천경합에 여념 없을 판이다. 지금은 10·26 서울시장 보선판도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변수가 치솟아 국민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일 신문들이 이에 관한 소식들을 클로
즈업 시키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일자 어느 신문 모서리 면에 세태에 접하기 어려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술 취한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10대 아들을 경찰 지구대에 데려와 죗값을 치르게 해달라고 자수 시킨 아버지 이야기였다. 감동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질렀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놀란 아버지는 ‘사람이 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들을 설득했다. 아버지의 말에 동의한 아들은 순순히 아버지와 함께 동네 지구대에 자수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부자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요즘 세상에 절제된 자식 사랑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이 얻어맞고 들어오면 대신 몽둥이 들고 나서는 세속 아닌가. 법망에 걸려든 거물급 인사들이 이런 참용기를 발휘할 수 있으면 한국사회가 벌써 정화되고 남았을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 사건에서 우리는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는 참이다.

여론의 비난과 사퇴 압박을 무릅쓰고 무표정한 얼굴로
언론에 침묵하는 곽노현 교육감의 결기 있는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공동피의자인 서울교대 박명기 교수가 혐의를 인정하고 이미 구속돼 있는 마당이다. 때문에 곽 교육감의 진실 고백이 곧 뒤따를 것이란 전망을 했다. 더욱이 그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일선 교육을 책임진 교육수장의 한 사람이란 점에서 더는 추한 뒷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곽 교육감은 비장한 모습으로 검찰과의 일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물론 본인으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말대로 도와줬던 사람이 어려움을 겪어 선의로 돈을 줬을 수 있다. 만약 구속된 박 교수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전혀 돈 얘기가 나오지 않았고 오로지 진보진영의 선거 승리만을 위한 조건 없는 후보단일화였으면 곽 교육감의 선의 주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제가 그렇지를 못함으로 해서 그동안 두 사람 간 우호 관계가 깨지고 갈등이 있었던 것은 움직이지 못할 사실이다. 그런 갈등 끝에 지불된 돈이 ‘착한 돈’ 일수는 없다. 또 선의로 주었다면 굳이 채권 채무 형식을 취하려 했을 까닭이 없다. 떳떳이 돈을 주지 못하고 동료교수나 친인척들 손을 거쳐 여러 차례 쪼개서 박 교수에게 돈을 건넨 것은 감추고 싶은 말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관계로 곽 교육감은 법 이전에 이미 교육수장 역할을 수행할 권위와 도덕성을 상실했다. 고집스럽게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다. 진실을 고백하는 용기를 앞의 소시민에게서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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