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교수
정범진 교수

최근 산업부의 누진제 완화조치에 대해 한전은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전력원가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결국 정부의 뜻대로 누진제 완화가 진행되었지만 전력원가공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런데 한전이 왜 누진제에 반대했고 전력원가공개는 왜 정부에 위협이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산업부가 제시한 누진제 완화방안 가운데 하나를 택한다면 국민은 1만원 정도의 전기요금 절감혜택을 누리게 된다. 반면 한전은 최대 3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입게 된다. 물론 전기를 더 많이 쓰는 가구는 더 큰 혜택을 입게 된다.

첫째, 정부는 우리 국민을 1만원 정도의 절감에 반색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 일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건 좀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 공청회에서 발표를 맡은 전문가가 모두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에너지 절약을 강조한 분들인데 이번엔 전기를 더 쓰도록 장려하는 누진제 개편안을 발표하는 것은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느낌이다. 셋째, 누진제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를 급작스럽게 논의하는 것도 석연치 않다.

한전이 국회의 요구에도 "영업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일관 해왔던 전력원가를 공개하겠다는 조치로 응수한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한전이 그 규모를 고려할 때 3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 등 한전을 벼랑 끝으로 모는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한전의 적자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는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진 것이 반발의 원인일 것이다. 둘째, 전력원가를 공개하겠다는 한전의 조치가 정부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또 뭔가? 국민이 알기를 원치않는 정보가 있는 것일까?

한전의 적자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LNG 가격의 상승을 원인이라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얘기다. 1000 MW급 원전이 하루를 정지해서 LNG 가스발전으로 대신하면 약2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원전가동률이 10%만 떨어지면 한전은 최소 연간 15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전기요금을 올리던지 국민의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이건 내년이건 다음정권이건 시점의 차이일 뿐이다. 국민이 그런 조삼모사(朝三暮四)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한전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회사이다. 소액투자자도 있지만 외국 투자자도 있다. 정부 정책의 급작스런 변화로 인하여 자기가 투자금이 휴지가 되어버린다면 둘중하나이다. 소송을 하든지 이에 순응한 한전에 배임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한전이 3년 연속 적자를 보게 된다면 대외 신용도가 하락할 것이다. 이것은 그간 한전이 빌려온 외채에 대한 이자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갚아야할 이자가 늘게 되고 새로운 대출의 이자율도 높아진다. 그럼 한전이 각종 플랜트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는 전력원가를 공개한 적이 없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원자력발전을 공격해왔다. 이제 한전이 전력원가를 공개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첫째, 원가공개를 하면 발전원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이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잠재울 수 있게 된다.

둘째, 그간 전력의 영역은 전문가의 영역이었고 소비자는 전기요금을 내라는 대로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자는 주택용, 농사용, 산업용으로 구분된 용도별 가격만 알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정책에 국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한다. 그렇다면 발전원별 가격도 알아야 한다. 발전원을 선택할 때 감당할 책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 국민이 지난해 불과 3~4%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에 25천억원의 전기요금을 퍼부은 것도 알아야 한다. 또 환경을 생각하는 국민의 소박한 바람이 저가의 중국산 패널을 수입하는데 지출되고 국내기업은 도산하고 있는 것도 알아야 한다. 또 재생에너지가 35%가 되면 보조금이 얼마가 될지도 알아야 한다.

이제 전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선량한 정부가 알아서 전력을 공급하며 세계 최저수준의 전기요금을 지불하던 시대가 아니다.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고 국민이 직접 발전원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전은 전력원가 혹은 그 이상도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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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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