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중진인 Y모 의원은 결정 장애를 가졌다. 보좌진들이 결정하기 쉬우라고 A안, B안을 가지고 들어가도 선뜻 A안과 B안 중에 선택하는 일이 없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다. 결정하지 않고 약속시간에 쫓겨 사무실을 나간다. 결국 그 날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날 다시 물으면 마지못해 결정을 하거나, 무슨 이유인지 두 안을 섞어 다시 작성해오라면서 시간을 끈다. A안 만을 단독으로 가지고 들어가도 시간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결정하지 않으니 일이 추진되지 못해야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특별교부금의 우선순위나 후원인의 민원같은 문제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 의원의 결정을 기다리다보면 결국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시한을 놓치기 때문이다. 일단 의원에게 보고는 하지만 보좌관이 알아서 결정하고 추진한다. 보좌진들은 이미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의원의 결정과 상관없이 일은 진행된다.

열 개의 일이 있으면 의원에게 열 개가 다 보고되지도 않는다. 의원이 나서야만 해결되는 일, 나중에라도 책임지고 자리를 내놔야 할 소지가 있는 일, 결정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한이 있더라도 의원이 꼭 알아야 하는 일만 보고 한다. 일이 다 해결되고 보고하면 왜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냐고 욕 한마디 먹을 일은 보고하지 않는다. 보좌관 전결로 처리해 놓고 결과만 알리는 일이 열 개 중에 예닐곱 개는 된다.

그렇다고 Y모 의원이 모든 일에 결정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니다. 가끔은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결정하고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등학교 동문 친구인 교수님이 제안한 ‘허무맹랑한’ 토론회나 법안을 발의하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인의 청탁성 민원을 장관에게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보좌관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의원이 하자는 대로 해서 욕을 먹지 않거나, 욕을 먹더라도 말렸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국회의원이 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내세울만한 학벌이나 재력, 사회활동으로 쌓은 명성에 운을 약간 섞으면 가능성이 생긴다. 요즘 정치지망생들은 방송으로 이름을 알리고 유튜브 스타가 되는 길을 찾기도 한다. Y모 의원도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사회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고 새 인물로 영입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Y모 의원이 남다른 면이라면 사람이 좋다는 것이고, 어쩌다보니 밭이 좋은 지역구를 만나 중진의원이 되었다.

정치인은 삶에 찌든 일반시민과 달리 나이 들어서도 꿈을 잃지 않는데 Y모 의원도 최근에 꿈이 생겼다. Y모 의원의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술자리에서나 어느 철모르는 지지자가 건배사로 외치고 Y모 의원은 민망해하던 꿈이었다. 지금 Y모 의원은 지역구를 도는 것보다 제주도에 초청강연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대통령 병’을 앓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려 꿈이 더 커지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Y모 의원이 대통령을 꿈꾸는 것이 탓할 일은 아니다. 동네 시의원도 시장 정도는 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여의도에 도는 우스개 중에 ‘국회의원 중에 대통령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다. 모든 의원들이 얼마 전까지 국회에서 얼굴 보던 사람이 청와대 주인이 되었는데 자기가 못하란 법은 없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Y모 의원도 이번 총선만 잘 통과하면 다음번엔 꼭 대권에 도전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Y모 의원이 대권을 꿈꾸는 동안 보좌진들은 생각한다. 아마 경선에 나갈까 말까 결정하지 못해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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