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자동차 나오는 시대에 57년째 ‘수동조작’ 고수

[사진=황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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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케이블카는 쉽게 오르기 힘든 산에 설치돼 관광객과 시민이 편리하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이동 수단이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체력이 부족한 사람도 쉽게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세계 명산에는 대부분 케이블카가 설치돼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중국 장가계 천문산의 케이블카나 다낭 파나힐 케이블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케이블카는 높은 곳을 움직이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치된다. 운행 역시 출발과 정지에 오차가 없도록 자동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많은 관광객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남산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지난 1962년 이후 무려 57년 간 수동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삭도공업 5.16 직후부터 57년간 운영
가족 지분 보유율 100% 사실상 가족 기업

지난 12일 오후 7시 15분경 서울시 중구 남산에서 운행 중이던 케이블카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는 사고가 났다. 남산 꼭대기 예장동 승강장에서 회현동 승강장으로 내려오던 케이블카는 도착 지점을 약 20m 남겨 두고 갑자기 속도를 올렸다. 남산 케이블카의 정상적인 속도는 3.2m/s 수준이다. 그러나 당시 케이블카는 승강장에 들어와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안전 펜스와 충돌해 유리창이 깨졌다.


사고 순간 케이블카 안에는 20여 명의 승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예상하지 못한 승객들은 안전펜스와 케이블카가 충돌할 당시 대부분 넘어졌다. 7명은 병원 치료를 요하는 부상을 입어 인근 순천향대병원과 백병원, 서울적십자병원 등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필리핀인과 일본인 등 다수의 외국인 관광객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이날 사고는 케이블카의 ‘수동 조작’ 방식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남산 케이블카는 상·하행 길이가 각각 605m로 약 3분의 운행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케이블카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운행 제어실에서 속도를 제어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케이블카가 내려올 때 제어실에서 속도를 조절해줘야 하는데 조절 미숙 또는 오작동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며 사고 이틀 후인 지난 14일 운행 제어를 맡았던 직원 A씨를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직원 실수가 문제의 전부?

그러나 이를 두고 시민들은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3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사람이 매번 실수 없이 멈추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 B씨(58·남)는 “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안 하고 살 수 있느냐”며 “직원을 탓하기 보다는 이러한 운영을 계속해온 회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C씨(31·여)씨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면서 “이번 사고도 그런 경우인데,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사고가 나고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누가 케이블카 운행 직원을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경찰은 남산케이블카를 운영하는 한국삭도공업 관리자들에 대한 입건 여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한 번 달아오른 여론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운행 중단’ 조치에 돌아서는 관광객들

남산 케이블카는 사고 직후 운행을 중단했다. 이는 지난 17일 기자가 직접 남산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는 ‘금일 기계 정비로 인해 운행이 중단됐다. 상·하부 매표실에서 전액환불 조치 해드리고 있다.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는 짤막한 안내문이 국어와 영어, 중국어 세 가지 언어로 붙어 있었다. 사고에 대한 부분은 안내돼 있지 않았다. 하부 매표소도 운행 중단 이유를 ‘안전점검’으로 안내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탓에 사고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현장을 찾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은 발길을 돌리거나 버스, 혹은 도보를 이용해 남산을 올라야 했다. 기자가 하산 중 만난 외국인 관광객 윌마르(42·콜롬비아)씨는 “케이블카를 타려고 했는데 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걸어 올라가는 중이다”라며 “안전 점검이라는 안내문은 봤는데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못 탄다니 아쉽다”고 전했다. 기자가 사고 소식을 알려주자 그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라면서 “조금 더 친절한 안내문을 붙여 줬으면 이해하기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관광객 장밍야오(29·중국)씨 역시 “케이블카 사고에 관한 안내문은 보지 못했다”라면서 “버스를 어디서 타야하는지 찾지 못해 걸어 올라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산에 꼭 올라가고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 고민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국유지를 반영구적 사업 기반으로

남산 케이블카는 지난 1962년 5월 개통됐다. 5.16 군사정변 직후 한국삭도공업이 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게 사업허가를 받아 57년간 독점적으로 운영 중이다. 한국삭도공업은 당시 국내 최대 기업 중 하나였던 대한제분 사장 출신 故 한석진씨가 1958년 설립한 회사다. 3년간 관광용 케이블카 사업을 준비한 그는 20인승 케이블카 두 대로 남산 케이블카 사업을 시작했다. 한씨는 1984년 사망했다. 이후 아들인 한광수(78)씨가 회사 대표직을 물려받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사 지분 20%는 한 대표가, 각각 15%씩 30%는 한 대표의 아들 2명이 보유하고 있다. 공동대표 이강운씨가 29%를, 이씨의 아들은 21%를 가지고 있다. 회사의 감사는 한 대표의 부인 이정학씨다. 지분 보유율은 물론 감사 역시 가족이 하는 사실상 ‘가족기업’인 셈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삭도공업은 케이블카 운영 등을 통해 지난해 130억500만 원에 달하는 매출을 거둬들였다. 영업이익만 52억5000만 원 수준이다. 2017년 매출 역시 115억6600만 원으로 100억 원을 넘었다. 당시 영업이익은 33억4800만 원이었다. 하지만 국유지인 남산을 이용한 대가로 낸 돈은 지난해 3624만 원에 불과했다. 영업이익의 1% 수준이다. 남산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전체와 하부 승강장 일부인 약 40.6%는 국유지에 해당한다. 국유지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산림청과 ‘국유지 대부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한국삭도공업은 매번 계약 갱신에 성공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유지 사용료를 현실에 맞게 증액하거나, 입찰제 도입을 통해 57년 간 독점적으로 이루어진 남산 케이블카 사업을 시장 경제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정우 의원 등 국회의원 12명은 작년 11월 민간 사업자의 사업 연한을 30년으로 하고, 기간이 끝나면 재허가를 받도록 하는 ‘궤도운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9개월째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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