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정면충돌을 계기로 두 나라의 국민성이 드러난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유교문화권 나라이며 대결국면에 직면할 땐 둘 다 이성보다는 충동적인 감성에 휘둘린다. 지난 12일 일본 경제산업성에서는 일본의 대한수출 규제 조치에 관한 한·일 실무회의가 열렸다. 두 명의 일본 대표는 넥타이도 매지 않았고 반소매 차림이었다. 한국 측은 넥타이에 정장을 했다. 회의장은 창고 같은 곳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생수병도 물 컵도 없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일본의 의도적인 불만 연출이었다. 일본 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외교관 예의마저 짓밟은 속알지 없는 작태였다. 어린애 같이 이성 보다는 감성적 충동에 휘둘린 탓이었다. 

한국 측의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도 감성적이고 충동적이었다. 일부 국민들은 대뜸 일본산 맥주 등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그들의 항일 의사 표출은 이해한다. 하지만 2012년 중국인들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때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은 일본 기업들의 중국 탈출을 자극, 중국에 도리어 해가 되었다. 우리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도 중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전남도청에서 “전남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열 두 척 배로 나라를 지켰다”고 환기시켰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을 상기시켜 대일 항쟁의식을 자극코자한 발언이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우리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으로 극복한 민족의 우수함이 있다”며 110여 년 전 항일 국채보상운동을 떠올렸다. 이 모두 일본과의 기술적인 외교문제를 국수주의적 민족감정으로 대응하려는 충동적 감성 표출이었다.  

우리의 외교전문가가 정부의 “냉정한 외교적 해법”을 촉구하자, 여권은 그를 “토착왜구”라고 몰아붙였다. 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당의 “항일 의병” 거론에 대해 “반일 감정 자극”이라고 경고하자, 여당 측은 황 대표를 “오독(誤讀)을 많이 한다”며 입을 틀어막으려했다. 국민들 간의 자유민주주의의 수평적 다양성 표출을 거부한 국수주의적 획일성 노정이었다. 

그러나 일본 3대 보험회사인 SOMPO홀딩스 대표는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을 발표하자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사히신문(朝日)은 사설을 통해 아베의 ‘대한 수출규제를 즉각 철회하라’고 반대했고 요미우리(讀賣)신문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그 무렵 우리 대기업인들과 언론들은 대부분 일본의 수출규제를 규탄만 했다. 국민적 단합을 보인 건 좋지만 국수적이고 수직적 획일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일부 일본인들은 한·일 강제합방을 원천 무효라며 한국 편을 들었고 위안부에 대한 군부의 죄상을 비판했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몇 년 전 위안부 소녀상 설치문제로 두 나라가 갈등을 빚고 있었을 때에도 한국행사에 참석, 김치를 담그기도 했고 아리랑도 합창했다. 일본의 자유민주적 다양성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한국 집권세력은 자유민주적 다양성보다는 수직적 획일성과 감성에 갇혀 있다.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장에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도 황교안 야당 대표에게는 악수를 청하지 않고 얼굴만 쳐다보며 비켜갔다. 정적(政敵)인 야당 대표와는 악수도 않는 감성적 편협성을 드러냈다. 아키에 여사와 대조된다. 

한국과 일본은 둘 다 가부장제적 유교 생활문화권에 속한다. 그러나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수평적 다양성에서 한국 보다 여유롭다. 일본은 1850년대 개방해 서양문화의 합리성과 수평적 다양성을 접했는데 반해, 한국은 90여 년 후인 1940년대에 이르러 서양문화를 만나게 된 탓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감성적 충동성을 지닌 두 국민 간의 충돌이 어디로 튈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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