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게 부인은 어떤 존재일까. ‘분신’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의 내면을 부인에게서 그대로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남편의 말 한 마디가 부메랑으로 작용하듯이, 본선에서 부인들의 행동이나 말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훈련된 이미지로 대중에게 접근하는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인의 자연스런 모습을 부인에게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부인의 이러한 관계에서 출발, ‘숨은 권력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는 참모들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부분을 가장 가까이서 솔직하게 조언해줄 수 있는 위치가 바로 부인들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부인은 영원한 러닝메이트’라는 말도 있다. 남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며 또 다른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이들 부인들의 면면이 궁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와대 안주인 만들기

그러나 아직까지 대권 주자 부인들의 움직임은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 남편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간간이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언론에 얼굴을 내비칠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 부인들이 대권과 무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2002 대선때 모 정당의 ‘청와대 안주인 만들기 계획’, 이른 바 ‘퍼스트레이디 프로그램(First lady Program)’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해도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영부인 상은 여전히 보수적”이라고 전했다. 선거 공학적으로 해석해도 마찬가지 결론이라는 그는 “나서는 만큼 외부의 공격을 받기 쉽상”이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퍼스트레이디를 준비하는 각 선거진영에서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메우는 선에서 부인의 역할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동을 성사시킨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부인 민혜경(49) 여사. 그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평가받고 있다. 민 여사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 장관과 결혼, 시어머니와 시동생 3명과 함께 살며 뒷바라지를 했다.

음악을 전공한 덕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가계를 꾸렸다고 한다. 그는 정치인들의 부인들이 으레 그렇듯 자원봉사 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인 인재근(52) 여사는 차기를 꿈꾸는 대권 주자의 부인들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 장관의 ‘숨은 내조자’라기보다는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온 동지의 이미지가 강한 인 여사는 요즘도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장관의 홈페이지에는 인 여사를 위한 코너가 따로 준비돼 있을 정도. 인 여사는 현재 김 장관의 사조직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재단 내 ‘이웃사랑 나누기 자원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처 성격상 민생체험이 많은 남편과 함께 자주 등장하곤 한다. 또한 인연이 있는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의 부인들과 함께 모임을 결성, 봉사활동을 벌이는 등 중진의원 부인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부인 이윤영(58) 여사는 약대 출신이다. 노동·빈민운동을 하는 남편이 있었음에도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럼에도 정치인으로 변신한 남편을 위해선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요즘 이 여사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는 주위의 평가가 나온다. 영화와 연극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손 지사의 자녀들, 그리고 이 여사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경기도’와 ‘문화’를 결합시키는 정책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공연 관람만은 손 지사와 나란히 등장한다고 전해진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부인 김윤옥(57) 여사의 ‘열성’은 이미 알려진 바다. 시와 관련된 바자 행사, 노숙자 급식, 자원봉사는 물론, 다양한 교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부동반 모임에도 예외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교사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러나 결코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주위의 평가다. 젊은 나이에 현대건설 회장에 오른 이 시장을 내조한 탓에 행동에 조심스럽다고 전해진다. 차기 대통령감 1위를 달리고 있는 고건 전 총리의 부인인 조현숙(67) 여사는 ‘내조’에만 주력하기로 유명하다. 고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수행할 당시 조 여사는 퍼스트레이디 권한대행 역할도 고사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가 대권 도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면 숨은 조 여사의 ‘끼’가 발휘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 여사는 경기여고 출신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정치인들의 부인들과 ‘동기’로 엮어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부인인 한인옥 여사, 이한동 전 총리의 부인인 조남숙 여사 등이 바로 그들이다. 공직자와 정치인 아내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조현숙 여사. 정치권 한 관계자는 그가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남편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 2 힐러리와 로라 부시는?

이처럼 2007년을 준비하고 있는 대권 주자의 부인들은 아직까지 남편의 ‘그림자’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 부인들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남다르다.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 제2부속실이 굳게 닫혀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며, 일단 전문직을 갖고 있는 부인도 있으며, 자신의 관심 분야와 관련해 점점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수록 ‘의외’의 모습을 보여줄 부인도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치열한 네거티브 선거전을 이겨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면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는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물론 이 역시 남편과의 상호보완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빌 클린턴을 구해낸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여사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클린턴의 대선 본선을 앞두고 미국 인텔리 여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안경’을 벗어 던졌으며, 그 때부터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백악관 주인을 넘볼 정도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화끈한 입담으로 요즘 미국 정가에 화젯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 역시 이 경우의 예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보수 성향이 짙어야 한다는 미국 퍼스트레이디상에 반기를 들고 있는 그는 기자들에게 인기 없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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