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주변 강대국 신각축장 됐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대한민국이 격랑에 휩쓸렸다. 기존 국제 사회에서 안보 공조는 대개 한미일-북중러라는 큰 줄기로 설명돼 왔다. 하지만 최근 이 공조에 빈틈이 발생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일본의 반도체에 대한 수출규제로 한일 관계가 경직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나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여러 문제가 가세해 한국 안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문자 그대로 ‘일촉즉발’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구한말 조선의 모습이 재현됐다고 표현한다.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요동치는 국제 정세를 일요서울이 살펴봤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북중러 연일 군사 도발…美 견제 위한 한미일 동맹 빈틈 ‘노림수’
- “기존 동아시아 질서, 중국 떠오르며 전환기적 변화 겪고 있어”  

최근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국제 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은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대한민국 한국방공식별구역(이하 KADIZ) 침범,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의 동참 여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외교·안보 관련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日, 경제보복 조치 연일 ‘초강수’…美 입장은?

한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주장하며 반도체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현지 언론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6일 일본 정부가 다음달 2일 개최되는 각의(내각회의의 약칭)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국가들은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한 심사가 면제되는 ‘포괄허가제’가 적용돼 수출 심사 과정에서 우대 혜택을 받는다. 

한국이 여기서 제외된다면 향후 일본 기업은 전자, 첨단소재, 통신 등 군사 전용 우려가 있는 수입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 품목당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고, 한국 기업은 수입품목을 민간용으로만 사용한다는 서약서도 내야 하는 등 수출입 절차가 복잡해진다. 이로 인해 수출입 과정이 지연되고 양국 경제가 모두 타격받을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이를 막고자 우리 정부는 국제 사회에 일본의 이 같은 조치가 부당함을 연일 호소하고 일본 측에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이 응하지 않아 한일 관계는 여전히 안갯속에 놓인 형국이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지난 25일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일 간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양자 회담과 한미일 3자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차관보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과)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본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아직 회담이 주선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대한 정책에 대해 연일 강경 기조를 늦추지 않는 반면, 우리와의 대화 창구를 열지 않는 상황에 관해 묻자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에) 강제 징용 문제가 직접 연관 안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 연결돼 있다”며 “원인에 대한 치유 없이 대증 요법만 쓰면 결국 한일 양국이 서로 맞부딪치는 충돌 코스로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은 결국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양국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일 관계의 경색 국면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직 외교관은 “일본에서는 더 이상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말아야 하고, 한국은 (이러한 상황이) 강제 징용 문제에서 비롯된 게 확실하니 이 문제에 관해 진지한 제안을 갖고 일본과 협의해야 한다”며 “서로 강 대 강이 아닌 합리적이고 냉정한, 객관적인 문제 해결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 한일 관계에 대해 양국 정상이 요청한다면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데 개입하겠단 취지의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그동안 동아시아 사회에서 한미일은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밝히며 “우리(미국)는 한국과 멋진 무역거래를 했지만 그(문재인 대통령)는 나에게 무역과 관련해 지금 많은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며 “둘 다 내가 관여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원한다면’ 미국이 직접 개입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한국은 개입을 요청한 반면, 일본은 개입을 원치 않아 사실상 미국의 직접 개입은 어려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중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로 인해 세간에서는 ‘미국이 양국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도 여러 의견이 오갔다. 이를 묻자 전직 외교관은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미국의 경우 전략적으로는 일본이 더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이 사안에 관해서는 일본 편이냐, 우리나라 편이냐를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양국 모두가 동맹국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가 좋은 관계를 맺어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원활히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전직 외교관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대미·대중 관계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美 ‘호르무즈 파병’ 논의, 북중러 어떻게 바라보나

미국 역시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의 참여를 다시 한 번 요구하고 나섰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지난 23~24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해 우리나라 외교·안보 관계자들과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 관련 논의가 심도 깊게 다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미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보호할 목적으로 호위연합체 구성을 추진 중이다.

볼튼 보좌관은 지난 24일 외교부를 찾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볼턴 보좌관이 “많은 도전이 이 지역과 다른 지역에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다른 지역’의 함의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풀이가 쏟아졌다.

이에 관해 강 장관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줘서 감사하다”며 “그 지역을 안정시키려는 당신의 리더십에 매우 감사하며 우리는 그 리더십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숨겨진 ‘호르무즈 해협’을 직접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더불어 볼턴 보좌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회담했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볼턴 보좌관은 방한 일정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비공개 회담을 첫 일정으로 잡아 눈길을 끌었다.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관계자보다도 앞서 만난 것이다. 이 회담은 나 원내대표가 E-메일로 직접 면담을 요청했고, 볼턴 보좌관이 이를 승인하면서 성사됐다.

이례적인 볼턴 보좌관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나왔다. 해외 파병이 되기 위해선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자 했다는 의견이다.

미국의 움직임에 북중러도 견제구를 던졌다. 북한은 지난 25일 오전 5시 34분과 5시 57분께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2발을 쐈다. 

당시 한미 군 당국은 첫 번째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430㎞, 두 번째는 약 690㎞라 밝혔으나, 이튿날인 지난 26일 합참 관계자는 두 발 모두 약 600㎞라는 종합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이 러시아 이스칸데르와 유사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형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KADIZ를 오가고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날 오전 중국의 폭격기(H-6) 2대와 러시아 폭격기(TU-95) 2대·조기경보통제기(A-50) 등 5대가 동해상을 연합 비행하며 KADIZ에 수차례 들락거렸다. 

이 가운데 러시아 A-50이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하자 군은 F-15K 전투기를 출격해 360여 발의 경고 사격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해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며 한국 조종사의 위협 비행을 문제시하는 등 우리나라와 엇갈리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해를 두고 ‘자국 영유권을 침범했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중·러의 안보 도발이 볼턴 보좌관의 방한과 관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볼턴 보좌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항의 표시라는 것이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국의 현 상황을 ‘구한말’의 모습에 빗댔다. 원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구한말 힘없던 대한제국 한반도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던 것처럼 한국도 러·중·일 등 주변 강대국의 신각축장이 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직 외교관은 “구한말 시기가 일종의 세력 전환기였다는 점에서는 지금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구한말은 중화질서가 성립돼 있었는데, 이 기존 세력에 근대화를 완성한 일본이 도전하면서 일종의 세력 전환 과정이 빚어졌다. 여기에 러시아까지 합류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3자 간 패권 전쟁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직 외교관은 “기존 동아시아 질서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전환기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면에서는 (구한말과) 비슷하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의 국력과 현재 한국의 국력이 다르고, 한미동맹도 있어 그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부연했다.

그는 “다만 미국이 그동안 동맹 중시 정책을 펼쳐 왔다면 최근 자국 이익 우선 정책으로 바뀌었다”며 “이런 것들이 우려할 사항이긴 하나, 한미동맹 자체는 건재하다”고 설명했다.

전직 외교관은 “우리가 주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열세이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국력을 갖추고 있다”며 “얼마든지 이러한 세력 전환 과정을 잘 관리하고 전략적인 공간을 늘려간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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