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도발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전후 일본의 부흥을 가능하게 했던 평화주의 노선을 과감하게 버리고, 헌법 제9조에 명시되어 있는 전쟁 포기와 군대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폐기하여 침략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아베의 욕망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55년 체제를 무너뜨렸던 1993년의 정치실험이 3년여 만에 실패한 뒤, 공명당과의 연립정권을 통해 더 강력한 집권체제를 구축한 자민당은 일시적으로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지만, 아베를 다시 내세워 2차세계대전 당시의 군부집권에 버금가는 가장 강력한 집권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 일본의 민주정치는 정권교체 없는 유사(類似)민주주의정치체제이며, 총리관저가 주도하는 정치에 직업 관료가 충성을 다해 보좌하는 관저 주도 정치이고, 반대 당으로서의 야당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아베 홀로 독주하고 있는 독재체제라고 불러도 무방한 정치체제다.

그러면 아베가 이토록 무례하게 한국에 대해 도발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패권국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패권국가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위협이 필수 요소인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던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월관계로 도발을 해 주지 않고 있다.

중국의 위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써 왔기 때문에 약효가 잘 듣지 않는다. 그 결과 일본인들이 우방으로 생각해 왔던 한국을 적으로 돌려 아시아의 맹주로서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고립을 통한 맹주전략의 일환으로 아베가 도발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현안 문제가 존재한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사실에서 파생하는 문제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것을 합법적 지배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원천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했던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는 서로 문제를 풀려 하지 않고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한·일 간에는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때로는 교과서왜곡 문제로, 때로는 독도영유권 문제로, 때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때로는 강제징용 문제로 양국 간의 갈등이 격화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의 본질은 통상의 문제 이전에 외교의 문제이며, 외교의 문제 이전에 역사인식의 문제이다. 박근혜 정권에서의 위안부 합의는 문재인 정권에서 파기되었으며,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은 실질적으로 해산되었다. 아베 도발의 첫 번째 명분이다.

작년 우리 대법원의 미쓰비시 강제징용 판결로 일본의 전범기업이 우리 국민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아베는 자국기업을 보호한다는 두 번째 명분하에 적반하장으로 우리 정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도발했다. 그것이 수출규제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아베의 실질적인 노림수, 그것은 한국 길들이기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도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국제법의 해석이다. 그럼에도 아베는 그 문제는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몰아가 국제적으로는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국내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통해 한국의 내정에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이슈가 발생한 이후, 한국 정치는 친일파를 소환하고, ‘토착왜구당이라는 인터넷 비속어가 시민권을 얻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베의 도발이 결과적으로 여당과 제1야당 간의 균열을 가속화시킴으로써 한국내에 자생적 친일파를 만들어 냈다.

내년 총선에서 일본 이슈가 유권자의 판단을 흐려서는 안 된다. 총선 이전에 일본이슈는 문재인정부가 깔끔히 정리해야 한다. 혹여 이 이슈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이야말로 아베의 한국 총선 개입 전략에 놀아나는 자생적 친일파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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