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박순자는 주목받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국회의원은 이름값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대선주자급 정치인,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알아주는 정치인, 자기 지역구에나 가야 대접받는 정치인,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국회의원인 걸 처음 알았다는 반응을 듣는 정치인으로 나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박 의원은 그가 숙원으로 여기는 신안산선 노선을 따라 지역구인 안산과 여의도 어디쯤 걸쳐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던 박 의원에게 최근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 의원은 국토위원장 사퇴 거부 사태로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했다. 애초에 박 의원이 국토위원장을 내놓지 않았을 때 뻔히 닥쳐올 불이익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당 지도부에 항명을 하면서까지 국토위원장 자리를 지키는 선택을 했다. 다들 짐작하셨다시피 총선이 불과 반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당 윤리위에서 6개월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5·18 망언을 한 김순례 의원보다 박 의원이 적어도 두 배는 더 해당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당 윤리위에서 3개월의 당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었다.

자한당의 이런 당내 정서로 봤을 때 박 의원의 내년 총선 공천은 쉽지 않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격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년 총선 공천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일이다.

박 의원에게는 아직 6개월여의 시간과 몇 가지 변수가 기회로 남아 있다. 박 의원은 특유의 동물적 정치감각을 발휘해 윤리위 징계 이후에 나경원 원내대표를 공개 저격하고 나섰다. 박 의원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것에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공격 포인트는 잘 잡았다. 박 의원의 격정 기자회견이 아니더라도 현재 당내에서 원내대표의 리더십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 입장에서는 민망한 밥그릇싸움으로 인한 것이라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지만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한국당 당원이나 주요 관계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욕이나 걸쭉하게 하고 말 일에 불과하다.

이해관계가 없기에 박 의원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쉽게 마모될 것이다. 내년 총선 무렵이 되면 사건의 디테일은 흐릿해지고 박순자라는 이름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일부이긴 하지만 박 의원의 지역구인 안산에서는 박 의원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도 있다고 한다. 박 의원이 신안산선 착공 문제를 국토위원장 자리를 지키는 명분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먹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내밀한 사정을 알 수 없는 안산 시민들 입장에서는 지역의 이해관계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욕먹고 지역에서 점수 따는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박 의원의 선택을 미스터리로 여긴다. 박 의원이 뻔히 보이는 파국을 선택할 정도로 정치 경륜이 없지는 않은데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의원의 공천을 받고 안 받고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박 의원 사태로 인해 우리 정치가 정치인 개인의 일탈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렸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당이 김순례 의원 같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를 엄중하게 대처했다면 박 의원이 저렇게 당의 기강을 흔드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한국당 입장에서는 박 의원을 탓할 일이 아니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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