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전남도청 방문에서 열두 척 얘기를 꺼냈다. 이순신 장군이 전선 12척으로 왜군을 격퇴한 명량해전을 상기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조국 민정수석은 페북에 죽창가를 게시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국채보상운동을 언급 대일(對日) 항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문 대통령은 25일 부산 거북선횟집을 찾았다. 여기서 전국 시·도지사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열두 척 얘기를 너무 비장하게 받아들였다오해 없기를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과 행보는 곧 국정 방향이기도 하다. 국민에게 열두 척과 거북선은 일본과 맞서 싸우자는 메시지나 진배없다.

문 대통령은 72주를 기점으로 강경대응으로 선회했다. 78일 아시아투데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경대응 찬성여론은 66.9%이다. 여권 핵심 지지층인 민주당 선호층에선 86.9%, 40대에선 81.3%, 호남에선 79.6%를 나타냈다. 강경대응 선회가 국민정서 특히 지지층 여론을 의식한 처사로 해석되는 대목이다(여론조사와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강경대응으로 일본과 통로가 막히자 미국의 중재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청와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재검토를 내비쳤다. 미국과 일본의 약점을 노린 것이다.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겐 호르무즈 해협 파병도 검토한다고 했다. 최후의 카드 두 장을 다 깐 것이다. 볼턴은 중재에 대한 해답은 내놓지 않고 선물 보따리만 갖고 떠나버렸다.

미일동맹은 린치핀((linchpin, 핵심 축)에 비유되곤 한다. 최근엔 한미관계를 린치핀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린치핀보다 한 수 아래인 코너스톤(cornerstone)이란 말을 주로 사용했다.

코너스톤은 건물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은 힘을 덜 쓰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의 힘을 필요로 한다.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섣부르게 중재에 나서기 어려운 입장이다.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동해상의 중·러 합동작전, 그리고 일본의 끊임없는 독도 도발은 한국의 안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북한마저 한국을 대화 상대로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제보복을 놓고 WTO에서 한일전을 벌였지만 우군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립무원 처지인 것이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침략을 미리 예상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수군을 통합하고 정예군으로 탈바꿈했다. 온갖 굴욕을 참아가며 식량을 모으고 무기를 마련했다. 이에 비해 선조는 국가안보보다 자신과 조정의 안위를 앞세웠다.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눈을 감았다. 유일한 해결책은 명나라 원군에 기대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의 열두 척 얘기에 시중에선 이런 농담이 돌고 있다. “열두 척은 있는데 이순신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대통령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국익은 지지층 여론보다 우선한다.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선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순신인가, 아니면 선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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