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장, 별도 위원장실에 안건 상정 권한까지... ‘의원 위 상왕’ 군림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국회 상임위원회는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 총 17개로 상설특별위원회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포함하면 18개다. 각 상임위원회는 위원장을 두고 있고 국회 원구성 협상 때 상임위원장 배분을 의논한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원내 의석수대로 나눠 갖는다. 상임위원장은 회의 진행과 개회 일시 등을 정할 권한을 갖고 소관 행정부를 관장할 수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한 금배지들의 다툼이 치열하다. 각 정당은 새로운 국회가 시작돼 원구성 협상을 할 때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임위를 차지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친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박순자 “나경원, 병원까지 찾아와 국토위원장 사퇴 압박... 공천으로 협박까지” 폭로

의원들은 상임위원회에 속해 의정활동을 펼친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는 그 소관에 속하는 의안과 청원 등의 심사를 할 수 있다. 상임위와 특위 위원장은 각 위원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한다. 위원장은 위원회의 의사일정과 개회일시를 간사와 협의해 정할 수 있다.

간사와 협의한다고 하지만 해당 상임위 회의에서 정회·산회 등을 선포하고 의원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도 상임위원장의 권한이다. 상임위 회의 때 위원들이 위원장에게 본인의 발언권이나 상대 당 의원의 발언권을 중지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야가 첨예하게 다루는 안건일수록 상임위원장의 힘은 강해진다. 고소·고발이 난무했던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탈 수 있었던 이유도 해당 위원회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각각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상임위원장 한마디에 피감기관 ‘움찔’

상임위원장이 되면 회의 진행권한뿐만 아니라 의원회관 사무실 외에 별도로 본청의 널찍한 위원장실을 사용한다. 또한 안건 상정 권한까지 있어 상임위원장이 배제시킨 안건이 법안소위에 올라가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부처 등 해당 피감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상임위원장은 언론에도 자주 등장해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 해당 피감기관장이 교체돼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려면 후보자가 선서문을 상임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인사청문회의 시작을 알린다. 인지도를 쌓아 차기 당대표나 국회의장 등을 노릴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지역구와 관련된 법안을 처리해 지역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아 다음 총선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국회는 지난해 상임위원장들이 매달 600만 원씩 받던 특수활동비를 폐지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자리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전반기에 민주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8개 상임위원장을 가져갔고 국민의당이 2명의 위원장을 배출했다. 후반기에는 민주당 8개, 한국당 7개, 바른미래당 2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결합해 의석수 20석 이상인 교섭단체 조건을 갖춘 ‘평화와정의의 의원모임’이 1개를 차지했다.

위원장 자리 위해 ‘쪼개기’ 편법까지

상임위원장은 보통 3선 이상이 맡는다. 3선 중에 없을 경우 4선이 맡기도 한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다. 하지만 많은 의원이 위원장직을 거치기 위해 1년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국회는 지난해 7월 16일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장을 선출했고 ‘임기 쪼개기’는 여전했다. 민주당에서 인재근·전혜숙 의원이 행정안전위원장과 여성가족위원장을 1년씩 돌아가면서 맡고 기획재정위원장을 정성호·이춘석 의원이 교대로 담당하기로 했다.

한국당은 더 많았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을 홍일표·이종구 의원이, 보건복지위원장을 이명수·김세연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장을 박순자·홍문표 의원이, 외교통일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각각 강석호·윤상현, 안상수·황영철 의원이 나눠 맡기로 했다. 이는 관례라고 하지만 일종의 편법인 셈이다.

상임위원장 자리에도 ‘알짜’가 따로 있다. 알짜 상임위를 차지하기 위해 여야는 원구성 협상부터 ‘수 싸움’이 치열하다. 대표적인 알짜 상임위는 국회 운영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다.

운영위원회는 국회 운영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는 상임위다. 국회사무처·도서관·예상정책처·입법조사처 등 국회 내 부서들과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 등 청와대 내 부서들을 소관으로 두고 있다. 국회를 운영한다는 측면에서 국회의장을 여당에서 맡는 것과 동일하게 운영위원장은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맡는 게 관례다. 그만큼 ‘힘’이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면 각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의결한다. 이후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서 가결되면 최종 통과된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다. 국회법 제86조 1항에 따르면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을 했을 경우에 법사위에 회부해 체계와 자구 심사를 거쳐야 한다. 법사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해 심사에서 제안자의 취지 설명과 토론을 생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사위는 단원제인 우리 국회에서 상원에 비유되기도 해 법사위원장의 권력이 막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법사위원장인 여상규 의원은 지난 6월 26일 “각 상임위가 한국당과 합의 없이 처리한 법안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허용되는 한 해당 상임위로 다시 회부하겠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를 하지 않은 채 올라온 법안을 법사위에서 돌려보내겠다는 뜻으로 법사위원장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는 ‘알짜 중에 알짜’로 꼽힌다. 위원회 개관에 따르면 국토위는 주택·토지·건설·수자원 등의 국토분야와 철도·도로·항공·물류 등의 교통분야에 관한 국회의 의사결정기능을 수행한다. 소관 기관으로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있기 때문에 국토위원장이 된다면 자신의 지역구와 관련한 SOC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을 따내는 게 쉬워진다. SOC 사업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고 지역 주민들과 관련된 사업이기 때문에 총선에서도 유리하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예산안과 결산을 심사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헌법 제54조에 따르면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고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헌법 제99조에는 감사원은 세입·세출의 결산을 매년 검사해 차년도 국회에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예결위는 원래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비상설 특별위원회로 구성됐다. 하지만 비상설로는 국예산안과 결산을 충분히 심의하는데 한계가 있어 지난 15대 국회말에 국회법을 개정해 16대 국회부터 연중 운영되는 상설특별위원회로 전환됐다.

예결위원장이 국가 운영에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예산 심사를 지휘하다 보니 본인의 지역구 예산을 편성하기 어렵지 않다. 정부가 제출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도 예결위가 담당한다. 지난 22일 한국당 소속인 김재원 예결위원장이 정부의 자료제출 미흡 등을 이유로 추경안 심사 중단을 선언했다. 추경안은 이날 기준으로 89일째 국회에 머물고 있다.

한국당, ‘알짜’ 상임위 자리로 당내 갈등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최근 한국당 몫인 예결위와 국토위 등에서 잡음이 발생했다. 한국당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5개 상임위원장직을 1년씩 돌아가면서 맡기로 원 구성안을 통과시켰다.

이중 예결위원장은 안상수·황영철 의원이 교대로 맡기로 했고 황 의원은 지난 3월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예결위원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같은 당인 김재원 의원이 자신은 원 구성 당시 당원권 정지로 인해 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경선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국고손실 및 뇌물혐의로 기소돼 당원권이 정지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으며 징계가 풀렸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예결위원장에는 참여 못 하신 분이 경선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경선으로 모아졌다”고 말해 경선이 확실시 됐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황 의원이 경선 출마를 포기하면서 김 의원이 예결위원장으로 추인됐다. 황 의원은 “경선 시작 전에 경선을 수용할 수 없다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나왔다. 이번 사례는 향후 한국당이 여러 합의를 조율할 때 신뢰성을 훼손시키는 대단히 잘못된 선례가 될 것”이라며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비박’ 황 의원이 아닌 ‘친박’ 김 의원의 편을 들어줬다는 평가와 함께 계파갈등이 불거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예결위원장 자리는 황 의원이 경선을 포기하며 일단락됐지만 국토위는 위원장인 박순자 의원과 지도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국토위원장은 원 구성 협상 당시 박 의원과 홍문표 의원이 1년씩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지난 8일 국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부동산·교통 등 각종 분야의 산적한 현안을 국회 역할에 걸맞게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국회법상 상임위원장 임기는 2년으로 정해져 있다. 지난해 국토위원장 선거에 나설 때부터 저에게 위원장 임기가 1년이라고 말해준 분은 없다”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에 홍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박 의원이 막무가내 버티기 몽니를 부리고 있다”며 “박 의원의 임기 연장 주장은 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개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떼쓰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돌연 입원까지 하며 완강하게 버텼다. 이에 한국당은 지난 10일 박 의원의 사퇴거부를 당에 유해한 행위라는 이유를 들어 윤리위원회에 회부했고 지난 23일 6개월 당원권 정지 조치를 내렸다. 홍 의원 측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박 의원의 주장은 일방적이다. 상임위원장이 뭐라고 부여잡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십차례 경선을 요청했지만 나 원내대표는 제 말을 무시하고 밤 10시에 연락도 없이 병원에 찾아와서 국토위원장을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사퇴하지 않으면) 공천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저를 협박하는 것이냐고 묻자 제가 상임위원장으로 사회 볼 때 한국당 소속 국토위원은 1명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고 폭로하며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이 총선을 앞둔 다음해 1월 말까지 당원권을 갖지 못하면 공천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도 있다. 신상진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장은 지난 18일 박 의원 공천심사 불이익 여부에 대해 “그렇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이 ‘금배지’를 포기하면서까지 강경하게 나오자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설이 돌고 있다.

박 의원의 지역구는 안산시 단원구을로 이곳은 다음달 신안산선(안산·시흥~여의도)이 착공 예정이다. 때문에 박 의원이 지역의 숙원사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 같은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이에 일요서울이 사실을 확인을 위해 박 의원 측 관계자와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은 본인이 직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물러나게 할 수 없어 앞으로 박 의원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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