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관계 최악인데...’…“기강 해이가 아닌 기강 실종”

강경화 외교부 장관.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일본 주재 총영사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외교부의 기강해이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경제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라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관용 원칙’,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에도 문제 끊이지 않아

최근 외교부에 따르면 외무고시 출신의 50대 총영사 A씨가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돼 수사기관으로 이첩됐다.

총영사 A씨는 일본에서 귀국해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따라 내부조사를 거쳐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성비위 혐의가 최종 확인되면 형사처벌과 중징계가 불가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외교부는 내부적으로 감사관실의 조사를 거쳐 고위공무원인 A씨의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 회부 여부와 징계수위 등을 결정하게 된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백색) 국가 배제 결정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휴가를 취소한 엄중한 상황에서 A씨의 성비위 사건은 큰 질타를 받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취임 초부터 줄곧 성비위 근절을 천명하고 외교관 성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겠다며 무관용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고위 외교관의 성추문이 끊이지 않고 근절은 요원한 상태다.

성추문에 갑질까지

외교부의 대표적인 성추문 사건은 이른바 상하이스캔들이다. 지난 20113월 중국 상하이 주재 외교관들과 중국 여성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정부 핵심 자료를 유출한 사건이다. 당시 영사들은 이 중국 여성에게 한국 비자를 부정발급해 주고, 한국비자 신청대리권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교부의 한 서기관은 지난 20154월부터 8월까지 서울의 카페 등지에서 16차례에 걸쳐 여성의 치마 속 등 신체 부위를 휴대전화 영상으로 찍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을 물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칠레 주재 공관서 일하는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현지 방송을 통해 적발돼 파문이 일었다.

지난 2017년에는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대사가 대사로 근무하던 2014~20172명의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김 전 대사는 지난달 22일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지난해 7월에는 공관장은 아니지만 주파키스탄 대사관의 외교관이 망고를 주겠다면서 부하 직원을 집으로 불러 성추행한 혐의가 적발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재외공관장의 빈번한 갑질 행태도 외교부 기강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최근 김도현 전 주베트남 대사와 도경환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는 직원들에 대한 폭언 등 갑질을 한 혐의와 청탁금지법 위반 등으로 각각 해임 처분을 받았다.

또 주몽골대사도 한국 비자를 발급해주는 브로커와 유착관계가 있다는 의혹과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으로 중앙징계위에 회부된 상태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한미 정상통화 기밀을 유출한 주미대사관 참사관도 파면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한일전 맡길 수 없다

외교부는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발생한 성비위 사건을 계기로 공관장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공관장이 성희롱 등 성비위로 징계를 받으면 징계 수위를 불문하고 공관장 재보임을 금지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감사 및 징계 강화’, ‘신고처리절차 개선’, ‘예방교육 내실화’, ‘상호존중 조직문화 확립등 복무기강 강화 종합대책도 내놓은 상태다. 당시 외교부는 외부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자체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성추문 재발방지에 나섰다. 지난 4월에는 외교부가 소속 공무원의 성 비위 사례가 담긴 감사보고서를 내부 통신망에 올려 전 직원에게 공개하기도 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의 성비위 근절 노력에도 또 다시 성추문 사건이 불거지면서 외교부도 곤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부가 다른 부처보다 성 비위 근절 대책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더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해외에서 지내다 보니 사각지대가 생기고 자신을 감시하는 눈이 없다고 생각해 일탈행위가 벌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향해 구멍 난 리더십과 기강 실종을 책임지고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오 원내대표는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한일 관계가 최악인 시기에 주일본 총영사는 장기간에 걸쳐 성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기강 해이가 아니라 기강 실종이라며 이런 정신 상태를 가진 정부가 일본에 경제 보복을 어떻게 대응할지 국민들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리더십의 명백한 한계다. 리더십 붕괴, 기강 실종의 외교상태에 한일전을 맡길 수 없다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은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일벌백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의원은 피해자는 외교부가 아닌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피해 사실을 신고했는데, 이는 외교부의 땅에 떨어진 신뢰도를 반증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온 국민이 대일 무역마찰에 대한 대응을 고민하는 이 시기에 공직기강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대응역량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문제 인사에 대한 엄정한 조치와 일벌백계를 통해 해이해진 공직기강을 다 잡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계속해서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서 장관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과거에는 피해자들이 쉽게 이런 사건을 접수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부절차가 잘 마련돼 있어서 피해자들이 위험을 느끼지 않고 그런 사건들을 본부에서 접수하고, 본부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고 있다고 부연했다.

여러 대책과 엄중 조치에도 불구하고 외교관들의 일탈행위가 끊이지 않아 강 장관의 리더십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또 한일 외교의 첨예한 갈등 국면에서 터진 사건인 만큼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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