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뒤흔든 ‘날강두 사건’의 전말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서 유벤투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서 유벤투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이름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축구 팬들에게 아이돌과도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박지성의 동료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슈퍼 스타’라는 별명에 걸맞은 호날두의 실력과 삶은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기 충분했다. 라이벌 리오넬 메시의 팬들이 별다른 별명을 가지지 않은 반면, 한국에서 호날두의 팬을 일컫는 ‘호동생’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 역시 그의 인기를 방증한다. 성폭행·탈세 혐의 등으로 온갖 논란은 물론 징역형까지 선고 받은 호날두의 방한이 티켓팅 시작 후 2시간 여 만에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은 한국에 그를 좋아하는 팬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계약 내용 위반한 채 ‘안하무인’ 행동한 유벤투스
비난 여론 봇물…수십억대 소송전으로 번질 양상

한국에서 ‘아이돌’ 못지 않던 호날두의 인기는 지난달 26일을 끝으로 거품처럼 사라졌다. 한국을 방문한 호날두가 6만 5천여 관중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호날두를 포함한 유벤투스 선수단은 오후 2시 45분이 돼서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당초 예정된 오후 12시 30분보다 2시간 이상 늦은 입국이었다. 이 때문에 오후 3시로 예정됐던 팬 사인회는 1시간 이상 늦어진 4시경 시작됐다. 이마저도 호날두는 ‘경기를 위한 컨디션 관리’라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잔루이지 부폰과 마티아스 데 리흐트 등이 대신 참석해 팬들과 시간을 보냈다. 충분히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이었지만, 대다수 팬들은 호날두에 대한 굳건한 ‘팬심(心)’으로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이러한 ‘팬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이날 경기는 오후 8시에 킥오프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보통 경기 시작 1시간 여 전에 양 팀의 선발 명단이 발표되는데, 7시가 한참 넘어도 유벤투스의 선발 명단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때 유벤투스 선수단이 서울의 교통체증으로 인해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 오는 금요일 서울의 퇴근 시간을 얕잡아 본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유벤투스 선수단은 킥오프 시간이 지난 8시 10분경 경기장에 도착했다. 유벤투스 선수단의 지각으로 인해 경기는 지연됐고, 6만 5천 여 명의 관중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다려야 했다. 경기는 8시 57분 시작됐다. 그러나 유벤투스 선발 명단에 호날두의 이름은 없었다. 호날두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몸도 풀지 않고 귀걸이를 한 채 벤치에 앉았다. 유벤투스 초청 경기를 진행한 대행사 ‘더페스타’의 발표에 따르면 호날두는 이날 45분 이상 출전하기로 계약돼 있었기에 팬들은 후반전 출전을 기대했다. 팀 K리그와 유벤투스 선수들은 친선 경기 답지 않게 치열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경기장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점점 높아지던 기대감과 달아오른 분위기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차게 식었다. 호날두가 후반전에도 유니폼을 입지 않고 벤치에 앉았기 때문이다. ‘45분 출전’이라는 계약 조건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연한 계약 위반이었다. 후반 중반이 지나자 관중들은 “호날두”를 연호하며 출전을 요구했다. 호날두 옆에 앉아 있던 곤살로 이과인 등 동료들도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지만 호날두는 굳은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관중들의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분노로 변해갔다. 결국 후반 종반 관중석에서는 호날두의 라이벌 메시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벤치에서 일어날 줄을 모르던 호날두는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라커룸으로 들어갔고,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토리노로 돌아가버렸다.

‘호날두 노쇼’ 사태…책임은 누구에게?

안하무인 격인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태도에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물론 티비로 지켜보던 시청자까지 온 국민이 폭발했다. 국민들은 한국을 철저하게 무시한 호날두와 유벤투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와 함께 초청 경기를 주최한 대행사 더페스타에 대한 비판 여론도 쏟아졌다. 더페스타의 로빈 장 대표가 경기 후 잠적했다는 소문이 돌며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 일부는 더페스타를 형사 고발하고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로빈 장 대표는 뒤늦게 “후반전 호날두의 출전을 요구했지만 유벤투스 측이 ‘호날두가 출전하기 싫다고 한다’고 했다”며 책임을 유벤투스 측에 넘겼지만 분노한 민심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더페스타 측의 입장문에는 팬들에 대한 보상 방안이 명시되지 않아 ‘핑계를 대고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는 비판을 추가로 받게 됐다. 물론 이번 사태를 발생케 한 가장 큰 책임은 유벤투스 측에 있다. 한국 팬들을 우습게 보고 기만한 유벤투스의 태도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측면에서 유벤투스 측이 책임질 부분은 많지 않다. 유벤투스가 더페스타 측에 약속된 위약금을 물 경우 추가로 법적 책임을 지우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위약금은 대전료(35억 원)의 1/4가량으로 알려졌다. 결국 팬들이 본 피해에 대한 금전적 책임은 더페스타 측이 물어야할 가능성이 높다.

사원수 4명의 군소 대행사는 어떻게 유벤투스를 초청할 수 있었나

잡코리아에 따르면 더페스타는 사원수가 4명에 불과한 군소 대행사다. 더군다나 더페스타는 스포츠 관련 이벤트를 주최한 경험이 전무하다. 호날두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면 유벤투스 초청 경기는 쉽게 진행할 수 없는 이벤트다. 실제 지난 2010년 FC 바르셀로나 방한을 추진했던 대행사는 엄청난 손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스포츠 이벤트 관련 포트폴리오가 전무한, ‘경험 부족’ 대항사를 덜컥 믿고 계약을 체결한 프로축구연맹에도 비판의 화살이 꽂히는 이유다. 다만 프로축구연맹은 유벤투스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맹 측이 경기 관련 브리핑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도 “유벤투스 관계자가 찾아와 충분히 개최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고 설명한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연맹 역시 순진했다. ‘믿었던’ 유벤투스는 거만한 태도로 한국 축구 팬들을 철저히 무시한 끝에 돈만 챙겨 이탈리아로 떠났다. 더페스타가 공개한 계약서 일부에 따르면 ‘호날두 45분 출전’ 등의 조항은 분명히 있었지만, 매년 수천억 원을 움직이는 유벤투스 입장에서 위약금은 크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니었다. 또 대행사는 광고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불법 사설 토토 광고까지 받아들였다. 이 광고는 경기장 전광판과 중계 화면을 통해 전국에 송출됐다. 명백한 ‘불법 광고’를 내보낸 KBS 측은 “스포츠 경기 A보드는 TV 노출을 전제로 주최사가 판매하는 비즈니스 권리이기 때문에 방송사가 개입할 법적 근거나 책임이 없다”며 “사후에 주최사가 벌금 등 상응한 조치를 받게 된다”고 해명했지만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결국 프로축구연맹이나 KBS는 손해만 본 셈이다. 12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호동생’들에게 상처만 주고 떠난 호날두와 유벤투스. 하지만 유벤투스 측은 지난달 31일 연맹의 항의 서한에 대해 ‘호날두는 근육 피로로 휴식이 필요했다’,  ‘경찰 에스코트가 없어 경기에 늦었다’ 등 이해할 수 없는 답변만 내놨다. 반성은커녕 한국 팬들의 추억을 망가트리고도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이 ‘슈퍼 스타’와 ‘빅 클럽’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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