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사무총장
김기수 사무총장

문재인 정부의 국가에너지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철저히 배제한 급진적 방식으로 진행되어오고 있다. 우선 대통령이 고리1호기 영구정지기념식에서 선거공약이었던 탈원전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그 직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론몰이와 졸속의 공론화작업이 진행되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공론화위원회는 국회나 정부부처의 각종 에너지관련 전문위원회를 제쳐두고 탈원전을 국가의 에너지 기본정책으로 확정시켰다. 그 결과가 바로 탈원전 로드맵인데 이 로드맵에는 법률제정이나 개정에 대한 내용이 전혀없다.

탈원전로드맵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산자부는 전기사업법에 근거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탈원전로드맵을 억지로 구겨넣었다. 그러나 전기사업법은 원자력발전사업자의 시장축출을 의미하는 탈원전과는 반대로 전기사업자간의 경쟁과 전력수급의 안정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산자부는 외면상으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일 뿐 한수원 등 발전사업자에 대한 강제력은 없다고 하면서도 한수원에 지도공문 1장을 보내서 월성1호기 운영을 중단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최근 산자부는 녹생성장기본법에 근거한 제3차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기본계획이 최상위 국가 에너지정책을 담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하위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20년 장기계획을 수립해야할 에너지기본계획의 내용은 구체적 실천방안이 없는 미사여구와 단기의 계획만 담겨있다. 결국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대통령이 만든 에너지로드맵의 해설서이거나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용비어천가에 불과하다.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사회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低下)시키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장이다. 결국 경제성장의 가장 큰 주춧돌은 바로 에너지다. 미래세대를 위하여 충분한 에너지원을 만들어 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지속가능성 있는 에너지계획이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는 재생에너지비중을 장기적으로 30%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정규모로는 감당이 되지 아니하는 대규모 전원저장설비, 그리고 환경파괴를 부르는 태양광설비의 확대, 에너지자체의 수입을 의미하는 동북아 전력그리드사업 등은 미래세대의 경제적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값싸고 질 좋은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이 미래세대의 희망을 설계하는 것이라면 현재의 재생에너지확대정책은 한마디로 미래세대의 희망을 빼앗는 것이다.

탈핵론자들은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탈핵국가를 지향해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된다면서 원전마피아를 양성한 정부주도의 에너지정책으로 인해 에너지민주주의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원자력발전은 방사선과 방사능유출의 위험 때문에 더 이상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민들에게 깊숙이 각인되었다.

방사선과 방사능의 위험이 과장되어 유포되었지만 정치권은 표를 의식한 소극적 포플리즘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목소리나 검증에 나서지 않고 원자력산업계와 탈핵론자를 다 같이 달래는 전법을 사용하였다.

재생에너지가 과연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서 유일한 것인가라는 점은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검증되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공론으로 포장된 여론조사가 탈원전을 공고화시켰다. 문재인정부가 일방적 탈원전을 강행해도 원자력산업계는 마치 속죄양이나 된 듯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탈핵운동가들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요즈음 그들의 지난날 주장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탈핵론자들은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민주적인 방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국민 개개인의 에너지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배분할지는 정말 민주적 방법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고 에너지믹스를 달성하기 위한 전문적인 노력은 법률이 정한 방식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런 장치들이 바로 전기사업법, 원자력법, 녹색성장법 등이다. 이런 법률들이 정한 각종 위원회와 각종 연구결과 들에 따라 연구되고 검증된 바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는 것이지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수립되는 에너지믹스는 에너지 독재일 뿐이다.

한 국가의 민주주의 정체가 지속가능하려면 그 국가권력을 행사할 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그 선출된 권력의 행사 역시 법률을 준수하는 민주적 방식으로 권력이 집행될 때 그 국가는 지속가능하며 우리는 이러한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정책은 국민들의 에너지 접근권에 밀접한 사항이며 국민의 경제생활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국가의 에너지정책은 언제 어느 때라도 단절 없이 충분한 에너지를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대국가에서 에너지는 정보통신, 보건의료, 산업이 모두 전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정책은 대의제 민주주의절차에 따라 기존에 제정된 법률을 준수하고 또 이 법령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절차를 거치는 절차적민주주의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절차적민주주의가 준수되어야만 모든 국민이 민주적으로 에너지정책에 관여하고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정책은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민 모두의 관심사이자 삶의 기본적 조건이 되는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특정 정파의 이익이나 특정 발전원 종사자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을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부와 대통령의 몫이지 대통령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결코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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