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수출 무역 관련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4600여건의 의견 제출 가운데 찬성이 95%가 넘었다는 이유로 반도체 소재 등 수출규제 한달 만에 결국 2차 경제 보복 조치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을 의결하였다.

화이트리스트, 일명 백색국가는 정부가 안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안전 보장 우호국을 말하는데 백색국가에 포함될 경우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에 정부가 허가 절차 등을 면제하는 혜택을 부여한다. 국제무역에서 백색국가는 일종의 동맹국가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개념상으로는 최소한 동맹국가가 아니게 된 셈이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코스피 지수는 7개월 만에 2000선이 깨졌고 코스닥도 600선을 위협받는 등 한일 양국의 증시가 동시에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전경련도 즉각적으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는 등 산업계 전반은 초긴장 상태로 사태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깊은 유감을 표하면서 이번 결정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상황반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신속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국민들 사이에는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붐이 불고 정치권에서는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정쟁으로 시끄러웠지만, 한국 정부만큼은 WTO 일반이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고위급 대화를 제안하는 등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대응해왔다.

한편에선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기대하면서 한일 갈등이 극적으로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고, 한국이 백색 국가에서 제외될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예측을 희망 삼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 앞에 돌아온 것은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조치일 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금에야 한국 정부는 강한 유감과 함께 반격할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 지금까지의 수세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직접적이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지 고심하면서 국제 여론전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결의가 WTO 규범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제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WTO 제소는 최종판정까지 2년여가 소요돼 당장 일본에 타격을 주거나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외교 안보 측면에서는 동맹국 간에 군사 기밀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맺은 협정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가 계속 거론되기도 한다.

또한 보다 직접적인 대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지고 있지만, 섣불리 강대강으로 맞붙다가는 양국간 치킨게임으로 흐르거나 카운터 펀치를 더 크게 맞을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외부적 요인에 의한 국란이 있을 때는 내부 총질하지 말고 단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친일, 반일의 극단적 정치 논쟁에 죽창 논쟁으로 불을 붙이기도 했고 급기야 한일 갈등이 내년도 총선에는 유리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문서화해서 회람하는 황당함을 범하기도 했다. 그런 문서를 보면서 일본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과연 대한민국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놓인 상황에서도 총선의 유불리를 따질 것인가. 그동안 장기간의 블랙리스트 피로감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새롭게 닥친 화이트리스트 파문이 노이로제로 고착화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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