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친문 주류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대표는 최근 인재영입을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인재영입 및 총선 전략을 진두지휘하던 대통령의 복심이자 최측근인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을 겨냥한 조치라는 게 여권 내 시각이다.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들의 묻지마식 공천에 대한 비문 진영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다. 또한 양 원장을 비롯한 친문 주류의 조국 대망론띄우기에도 이 대표는 이재명·김부겸 카드로 맞서고 있다. 당과 청와대를 대표해 총선을 이끌고 있는 이 대표와 양 원장 투 톱 간 전운이 짙게 감돌고 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19.05.29 뉴시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19.05.29 뉴시스

- 李대표, “말 많은 사람 뺀다친문 양정철에 경고날려
, 민주연구원한일갈등 여론동향보고서운신폭 축소

양정철 전 비서관이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두 가지를 공언했다. 하나는 연구원이 총선 승리를 위한 병참기지화인재영입 및 전략 수립이었다. 이후 양 원장의 광폭행보가 이어졌다. 국회의장 단독 면담을 시작으로 서훈 국정원장 심야 회동,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을 잇따라 만났다. 양 원장은 광폭행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중국, 미국 등 싱크탱크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해외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지난 721일에는 양정철 원장이 기업 목소리 수렴에도 나선다고 밝혔다. 민주연구원은 4대 기업(삼성·SK·현대차·LG) 산하 연구소를 포함해 국내 주요 민간 경제연구원 7곳과 릴레이 경청(傾聽)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예고했다. 정관계 인사에 기업인들까지 만나는 당대표급 행보에 대해 당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양 원장의 행보가 내년 총선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잔뜩 긴장하는 진영은 비주류 진영이다.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들이 대거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 원장의 거침없는 행보는 지난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묻지마식 친문 공천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인재영입 두고 비문 이 대표 내세워 제동

게다가 여의도에서는 비문 중진급 의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비주류가 공천받기 쉽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데다 양 원장이 이 대표의 내년 총선 불출마를 들어 중진급 의원들에게 불출마 선언을 종용하고 있다는 말까지 더해져 분위기가 흉흉한 상황이었다.

이에 이 대표는 720일 국회에서 가진 지자간담회를 통해 인재 영입에 직접 나설 생각이라며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되, 최종 수락은 당대표의 면담이 이뤄진 뒤에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양 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들의 세력화에 대해 견제구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가 사실상 인재영입 주도권과 결정권이 당대표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미 양 원장이 취임 직후 총선 전략을 주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이 대표는 연구원장은 연구원장일 뿐, 선거는 당이 치른다고 주의를 준 바 있다. 양 원장에게 보내는 두 번째 경고인 셈이다. 특히 인재영입 순위가 곧 당 비례대표 순위로 낙점이 되면 앞선 번호를 받은 인사들은 사실상 금배지를 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양 원장이 주도할 경우 친문 친위부대가 대거 생기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 대표는 전해철 의원을 특보단 단장으로 임명했다. 전 의원과 양 원장은 대통령 최측근 그룹인 ‘3로 불리며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데 최대 공신이다. 하지만 문 정권이 들어서 양 원장이 성골 대접을 받는다면 전 의원은 예전 명성만 못하다는 게 당내 분위기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리는 전 의원을 통해 양 원장에게 권력과 인재가 집중되는 것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전 의원 역시 총선 등 당이 해야 할 일, 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특보단은 당 대표를 도와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민주당을 이끌어 가겠다고 밝혔다.

총선 보고서 파문, 민주연구원 부글부글

양 원장에 대한 이 대표의 견제 최고 정점은 729일이었다. 이날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스갯소리라고 전제하면서 이 대표가 8월에 구성될 인재영입위에서 말 많은 사람은 뺀다고 했다자의든 타의든 인재영입과 관련해 말이 많은 사람은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 1인 체제로 인재영입위를 꾸려나갈 수도 있고 내부적으로 위원을 선임해도 공개하지 않는 방식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말 많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여권 일각에서는 양정철 원장과 백원우 부원장을 겨냥해 농담을 핑계로 저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민주연구원 발 총선보고서 파장은 양 원장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었다. 단초는 민주연구원이 한일갈등에 관한 여론동양 보고서를 작성해 당내 소속 의원 128명에게 이메일 발송하면서다.

해당 보고서는 626~27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조사한 7월 정례 여론조사 결과로, “최근 한일갈등에 관한 대응은 총선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 문제와 경제 문제를 분리한 원칙적인 대응이 중요하다“KSOI 7월 정기조사 결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여야의 대응방식의 차이가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78.6%로 절대 다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한일 갈등이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취지의 보고서인 셈이다. 당장 민주연구원은 731일 해명자료를 통해 충분한 내부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주의와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또한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을 선거와 연결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당이나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보고서가 오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보다 신중을 기하겠다고 해명했다. 양 원장 역시 최근 과중한 업무 속에서 미처 꼼꼼하게 챙겨보지 못한 제 불찰이라며 보고서 생성과 공유 절차에 좀더 유의해 신중을 기하도록 직원들을 관리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해찬 대표는 이에 대해 선거에 있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연구원과 이 대표를 위시한 비문 진영 속내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단 연구원 측에서는 대체 누가 비공개 보고서를 외부로 흘렸느냐민주당 의원들의 기강이 해이해진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왔다는 후문이다. 사실상 양 원장을 물 먹이기 위해 고의로 비문진영에서 자료를 외부에 흘렸다는 의심 제기다.

반면 비문 진영에서는 선거를 총지휘한다고 하더니 드디어 사고를 쳤다”, “집권여당이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감과 함께 책임론도 제기할 태세다. 친일 반일 프레임으로 수세에 몰린 한국당은 양 원장 사퇴를 요구하면서 총공세를 펼쳤다.

81일 황교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기업은 죽느냐 사느냐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데 이 정권은 총선 표 계산만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매국적 정국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여당이) 친일 프레임에 집착한 이유는 총선 승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민주연구원이 아니라 민중선동연구원이라고 질타했다. 총선 보고서 파문으로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양 원장의 행보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운신의 폭도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졌다.

한편 양 원장에 대한 견제는 단순히 총선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을 둘러싼 주류와 비주류 간 신경전도 한몫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 취임 후 조국 대망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사다.

양 원장은 지난 518일 광화문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우리 당에서는 다음 대선에 잠재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유시민·조국이 가세해서 열심히 경쟁하면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느냐라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조 전 수석의 대선 출마를 종용했었다.

당시 여권에서는 대권 출마를 고사하는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함께 조국 전 민정수석을 거론한 것은 유 이사장보다는 조국 수석을 띄우기 위한 양 원장의 고도의 계산된 정치적 수사라는 관측이 많았다. 당시 여당 내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이미 오른 유 이사장과 출마 생각이 없는 조국 수석을 동시에 거론한 것은 조 전 수석을 단번에 여권 대권주자로 만든 계기가 됐다.

특히 조 전 수석이 청와대를 나오기 직전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친일 반일 논란을 확산시키면서 논란의 한가운데 서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또한 차기 법무부장관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친문 주류가 조 전 수석을 대선주자로 내세우려는 대권 플랜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조국 대망론에 이재명·김부겸 비문 반격 신호탄?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조국 대망론 관련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건 120%고 대선 후보까지 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어 그는 조국 수석은 1월 중에 법무부 장관을 던지고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고 당선돼서 2년 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조국 대망론타임테이블을 밝혔다.

여권에서도 조국 대망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8개월 장관직을 수행하며 행정 경험을 쌓은 바 있다. 무엇보다 친문 주류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부산 출신이라는 점과 높은 대중적 인지도 등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친문 주류는 김경수 경남지사, 유시민 이사장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선 출마가 힘든 상황에서 친문 주자로는 조국 전 수석만 한 인물이 없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게다가 당내 주류인 친문이 밀 경우 잠재적 경쟁자인 이낙연 총리, 김부겸 의원, 이재명 지사, 박원순 시장을 경선에서도 무난하게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

비주류 대선 주자 입장에서도 양 원장 등 친문 주류가 밀고 있는 조 전 수석이 나설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차기 대권에서 흑묘백묘론을 통해 장기집권을 구상하고 있는 이 대표는 친문 순혈주의에 입각한 조국 대망론보다는 이재명 지사, 김부겸 의원 등 비문 대권주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 원장에 대한 견제구는 친문 비문 공천경쟁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까지 염두에 둔 비주류의 반격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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