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배, “환경부 직원과 기업 간 유착, 조직적 증거인멸 밝혀져”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8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2011년 처음 문제가 불거지고 수사가 마무리되기까지 꼬박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 피해자는 6476명, 이 가운데 1421명이 숨졌다. 검찰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제조한 SK케미칼과 판매사인 애경산업 등 관계자 총 34명 등을 재판부에 넘겼다.

하지만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만큼 완전한 배상을 받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채이배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은 이번 조사에서 “환경부 직원과 가습기살균제 기업 간의 유착과 기업 차원의 조직적 증거인멸 혐의도 밝혀졌다”며 “지금이라도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성과다”라고 했다.

폐손상·호흡 곤란 등 주로 영유아·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
뒷돈 받은 환경부 서기관도 재판에… ‘특별공판팀’ 구성 ‘공소유지’ 방침

채 의장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제123차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검찰이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홍지호 前 SK케미칼 대표 등을 구속기소하고, 사건 관련 내부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2차 수사를 마무리했다. 2011년 피해자가 발생한 지 8년 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수사를 통해 2016년 1차 수사 당시 제품의 원료와 피해와의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아 책임을 면한 이들도 재판에 넘겨졌으며, 환경부 직원과 가습기살균제 기업 간의 유착과 기업 차원의 조직적 증거인멸 혐의도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번 재수사 과정에서 수백만 원 상당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환경부 감사 자료, CMIT·MIT 건강영향평가 결과보고서 등을 건넨 최모 환경부 서기관도 불구속기소했다. 심지어 최 서기관은 지난해 11월 검찰 재수사가 예고되자 제조사 측에 연락해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관련 자료를 철저히 삭제해 달라”고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공판팀을 구성해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면서 “환경부, 사회적참사특조위, 피해자 단체 등과 지속적으로 협력·소통해 회복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독성 은폐 증거인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서울 시내에서 산모 7~8명이 폐가 굳으며 의문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가습기살균제(세정제)로 인해 폐손상증후군(기도 손상, 호흡 곤란·기침, 급속한 폐손상(섬유화) 등의 증상)이 일어나 주로 영유아, 아동, 임신부, 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이다. 1994년 최초로 가습기살균제가 출시(유공(현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된 이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잇단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급성호흡부전을 주증상으로 하는 중증폐렴 임산부 환자의 입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신고와 조사 요청이 질병관리본부에 접수되면서 역학조사가 시행됐다.

그해 8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원인 미상의 폐손상 원인이 가습기살균제(세정제)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확실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는 않았다며 제품 수거에 나서지 않았다가 그해 11월 역학조사와 동물흡입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서 파는 6가지 제품에 대해 위해성이 확인됐다며 수거에 나섰다.

그리고 2012년 2월에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인산염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의 독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명백해졌음에도 기업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이 마련되지 않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 제품을 제조·유통한 업체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2012년 1월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을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그해 8월에는 유족 8명이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 10곳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검찰은 이 형사고발 사건에 대해 피해조사 결과가 나와야 조사할 수 있다며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중증환자들은 1억 9000만 원이나 하는 폐 이식비와 매달 350만 원 상당의 치료비를 자비 부담했다. 

검찰 수사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전담수사팀이 구성돼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2016년 2월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제조·유통사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4월 초에는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 PB제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세퓨 가습기살균제 등 4개 제품이 폐손상을 유발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잠시 주춤했던 수사는 2018년 11월 가습기살균제전국참사네트워크의 고발로 재시작됐다. 재수사에서 검찰은 1994년 최초 가습기살균제 개발 당시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연구노트 등을 압수해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에서 처음 개발 당시부터 안전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지난달 23일 ‘가습기 메이트’의 원료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제조·판매한 SK케미칼 대표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GS리테일 등 6개 업체의 전·현직 임직원 15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를 공급한 SK케미칼 직원 1명을 구속기소, 3명을 불구속기소했으며 증거인멸·은닉한 혐의로 SK케미칼·애경산업·필러 등 전·현직 임직원 3명을 구속기소, 6명을 불구속기소했다.

피해자 보상 등 남은 과제는?

한편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유통기업이 긴장하고 있다. 이미 적극적인 사과와 보상을 마련해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해 달라는 시민단체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기업들이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배상과 보상에 나서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관리 감독과 대응 과정에서 제기된 부실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습기 사건 수사가 길어지면서 1차 조사에서 유죄를 받았던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사 관계자들은 형을 마치거나, 만기 출소를 기다리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에 대한 책임 추궁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금고 3년의 실형을 받았던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는 지난달 만기 출소했고, 김원회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내년 출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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