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개혁에 성공하면서 국력을 키운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가 만주를 세력권으로 편입시키고 이어 한반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칠 경우 대한제국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침해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영국 역시 러시아가 만주와 한반도로 남하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던 터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아예 대한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1905년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1910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본은 또한 1940년 독일과 이탈리아와 함께 동맹을 맺었다. 이른바 ‘삼국동맹’이었다. 독일·이탈리아의 유럽 지배권과 일본의 아시아 패권을 서로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일본은 또 3개월이면 끝낼 수 있다는 군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3년이 넘도록 중일전쟁의 늪에 빠진 상태가 되자 중국을 지원하는 미국을 견제키 위해 독일과 동맹했다.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일본은 그러나 1945년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패전국이 된 일본은 미국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하지욕(跨下之辱,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미일동맹을 맺으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끝에 일본은 다시 세계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일본은 지금도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 옆에서 보기에 비굴하기 조차해 보인다.

그러나 그러는 아베 정권에 일본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일본은 이에 머물지 않고 ‘제2의 영일동맹’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이 자유무역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를 재빨리 간파해 추파를 던진 것이다.

이처럼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은 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합종연횡식 연맹을 체결하는 등 총성 없는 외교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 정부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 오매불망 북한에만 매달리는 것 같은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한반도 주변 동북아(東北亞) 정세는 물론 국제정치 구조에 격변을 일으킬 만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에는 관심조차 보이질 않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지금처럼 흔들린 적도 없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고 반대급부로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지도 않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속국인 양 무시한다. 동북아 정세에 일정 부분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는 한국외교에 아예 없다고 할 정도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일 동맹이라는 굳건한 우산이 뒷받침돼서였다. 더욱이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생존과 직결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의 인조는 명(明)과 청(靑) 사이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 병자호란을 불렀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국왕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다치고 붙잡혀 끌려갔다.

세계는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각축장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국제구조 변화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을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 작정인 것처럼 우리 역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친미·반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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