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시장에서 A사가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이 70%라고 하자. 거의 독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다크호스 B사가 이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B사는 사과와 비슷한 과일 업종에서 60%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만만치 않다. 자신을 확실히 밀어주겠다는 스폰서도 있어 든든하다. 앞으로 살길은 사과시장에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B사는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A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B사가 사과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수수방관할까? 들어와서 어디 한 번 정정당당하게 경쟁해보자고 할까?
 
아마도 B사가 사과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싹을 끊어버리려 할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B사의 시장 진입을 늦추게 하거나 경쟁력을 저하시키려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A사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렇게 하기가 민망스럽다. 사과 업계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B사를 직접 어떻게 한다는 것은 A사 이름에 걸맞지 않다.
 
그렇다면 A사는 어찌 해야 할까?
 
간접적인 방법으로 B사의 진입을 방해하려 들 것이다. B사와 활발한 거래를 하긴 하지만 서로 감정이 안 좋은 C사를 이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C사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든 그럴듯한 명분으로 B사에 시비를 걸어 B사와 거래를 끊어버리게 하면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 무역전쟁이 이와 같다는 분석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 정부가 4차산업을 이끌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전력을 다하기로 하고 삼성 등 반도체 업체에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하자 이들 업체들도 천문학적 금액으로 투자하기로 하는 등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데이터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60%. 반면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 및 제어를 하는 시스템 반도체 비중은 겨우 3%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술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격적인 생산을 하게 된다면 7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러니 미국이 한국을 잠재적 위협 국가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직접 대놓고 한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하기에는 영 체면이 서질 않는다. 한국과 미묘한 관계인 일본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국에 반도체 소재를 수출하고 있는 일본이 아닌가. 일본 역시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진입을 두려워하고 있을 터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러는 미국을 우리가 대놓고 욕할 수도 없다. 미국은 우리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분석 아닌가.
 
기실 강대국들은 제국 유지를 위해 약간의 피해를 보더라도 변방의 잠재적 위협요소를 싹부터 밟고 잘라왔다. 인류사를 보라. 로마가 그랬고 중원을 차지한 나라가 그랬다. 미국, 일본이라고 다를까. 국제사회는 이처럼 약육강식의 냉정한 ‘정글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치사하고 냉혹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약소국들은 사활을 건 지혜를 짜낸다. 잘못된 판단을 한 나라는 망하고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한 나라는 살아남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지금 죽창가나 부르고 의병을 일으키고, 니편 내편 가르는 이분법 사고가 마치 정의인 것처럼 떠들어대거나, 민족이니 선의니 애국이니 평화니 하는 낭만주의 사고 따위로 국민들을 선동하는 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정녕 뱀같이 지혜로울 순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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