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대 군인’ 사고 시에는 보험 적용 안 돼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보험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큰 사고가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내고,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을 받는 ‘예방 시스템’이다. 그 중에서도 운전자 보험은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가입하는 것이 상식이다. 차량이 대부분 고가이기에 가벼운 사고만 일어나도 감당해야할 금액이 크기 때문이다. 또 인사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보험 회사에서는 대인보험과 대물보험, 자차보험 등 여러 종류의 보험으로 고객들의 손해를 보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는 보험이 군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훈련 중 벌어진 사고에 보험 적용 안 되는 상황 비상식적”
개정 내용 담은 법안 발의됐으나 국회 계류 중

지난 2017년 6월 24일, 여느 날처럼 하루를 시작하던 오모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운전병으로 복무 중이던 아들이 전역을 4개월여 앞두고 진행된 훈련 중 인사 사고를 냈다는 것이었다.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예하 부대에서 근무하던 아들은 이날 물자 수송 임무를 맡아 2.5톤 군용트럭을 운전, 이동하던 중 서화면 천도리 비득고개 인근 도로에서 우회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훈련을 통제하던 통제관 A씨가 차량에 치여 쓰러졌다. A씨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인사 사고를 낸 아들은 군형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오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잘못한 거니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얼마 뒤 피해자 유가족 측에서 오씨의 아들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사망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소송 금액은 4억 6000만 원에 달했다. 유가족 측이 아들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은 현행법상 군인 대 군인 사고에서 사실상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 제29조 제2항에 따르면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 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또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 대원이 전투, 훈련 등 직무 집행과 관련해 전사, 순직하거나 공상을 입은 경우에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해당 법으로 인해 A씨의 유가족 측은 국가가 정하는 보상 이외에는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국가가 정하는 보상금이 민간 보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오씨는 “일반적으로 민간 보험에서는 대인 사고 시 보상 한도를 무제한으로 한다”며 “군에서 주는 금액이 적다 보니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피해자 측이) 민사 소송을 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무보험’ 사실 운전병들에게 공지 안 돼

이번 사건을 접한 이들은 대부분 “운전병이 무보험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들이 운전병으로 복무 중이라는 B(52. 여)씨는 “나라에서 보험 다 해주는 줄 알고 운전병으로 입대한 것”이라며 “무보험으로 달린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니 걱정이 돼 보직을 바꾸라고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어머니 C(55. 여)씨 역시 “아들이 운전이나 배워 오겠다고 운전병으로 입대했다”면서 “지금 생각으로는 (운전) 안 배워도 좋으니 운전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어 “군대에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다칠까봐 노심초사 해야 하고 사고 나면 자기 돈으로 물어줘야 하는 게 합리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운전병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사전에 공지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강원도 모 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전역한 D(29. 남)씨는 “야수교(야전수송교육대)에서는 물론 자대 배치를 받고 난 뒤에도 무보험에 대한 설명은 들은 기억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운전병으로 복무 중인 E(23. 남)씨는 “군인하고 사고가 나면 보험이 안 되는 거냐”고 되물으며 “갑자기 운전하기 무서워진다”고 토로했다. 오씨 역시 “아들도 무보험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방부와 육군 홈페이지에서는 ‘운전병 무보험’ 관련 내용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병과 모집을 위한 홍보만 하지 말고, 안 좋은 점도 충분히 공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운전병에게 보험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운전병 지원률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軍 “불합리한 부분 발생…법령개정 추진”

오씨 아들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군에서는 훈련 중 교통사고를 낸 운전병이 형사 처분을 면하기 위해 사비로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4년간 군용차량 운전병 등이 교통사고를 낸 경우 피해 상대방이 일반인이 아닌 군인으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아 공소제기 대상이 매년 10건 정도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씨의 사례 외에도 지난해 9월 14일 육군 모 부대에서 사고를 낸 운전병이 뒷좌석에 타고 있던 병사 5명에게 자비로 합의금을 지불한 사건은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병역 의무’라는 미명하에 군에 입대해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에서 합의금을 떼어 줘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유사 사례의 지속 발생에 따른 부작용 개선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도 수차례 진행됐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현역 병사가 군용차량을 운전하던 중 군인 등을 대상으로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피해 군인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 특례 조항을 담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군인과 군인 간 교통사고의 책임을 군 장병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당 법안은 2019년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뒤 7월 16일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에서 심의해 본회의에 상정, 발효될 예정이었지만 국회가 파행을 거듭한 탓에 계류돼 있다.


군 측도 법률의 불합리함을 인정하고 현재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법률 개정 전까지 전 차량을 ‘탑승자 상해보험 특약’에 추가로 가입시켜 피해자가 희망 시 군병원 치료 외 민간병원 치료비(최대 500만 원)와 사망 및 후유장해보험금(최대 1억 원)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한 상태다. 다만 이 역시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대책이 되기는 부족해 신속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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