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강대강으로 치닫던 한일 경제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일본이 추가 수출규제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고 기존 수출규제품목으로 정한 3건 중 1건을 허가해 문재인 정부 역시 일본을 백색국가대상에서 제외하려던 조치를 유보했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일본은 여전히 추가조치를 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고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오는 828일 일본이 수출규제 시행세칙 시행에 앞서 분수령은 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와 21일 열릴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이 확전이냐 휴전이냐를 가리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 대일본 통상특위를 신설하는 등 이번 일본 발 경제보복을 계기로 장기적으로 강대국과 경제 종속적 관계를 종식하는 전화위복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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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직속 일본특위 신설 검토수장 온건파 기용
- 단기전 접고 장기전 준비, 직접 챙기겠다결심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규제품목 수출 1건을 허가하고 추가로 수출규제 품목을 지정하지 않으면서 문재인 정부도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반격 카드를 유보하면서 양국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가 규제 대상인 3개 품목 중 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감광액인 EUV(극자외선) 포트레지스트의 수출을 처음으로 허용하면서 일본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 제외하려던 조치를 미뤘다. 대신 문재인정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여러 가지 안을 가정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당은 채찍질’, 청와대, ‘당근책강온 전략

일본과 경제 전쟁이 일시적으로 소강국면이지만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대일본 관련 특위를 구성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전면에는 당이 나서 일본 관련 채찍 역할을 하고 정부는 막후에서 조정과 협상을 위한 준비를 하는 등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내에서만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회'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 특별위원회한일 경제전 예산입법지원단등 총 3개의 대응 및 지원 기구를 구성했다. 특히 여당은 일본특위에 4선 최재성 의원을,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위는 6선이자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을 지냈던 정세균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일본특위의 경우, 수시로 브리핑을 통해 일본의 경제 도발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사실상 여론을 수렴하는 테스트베드의 역할과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일 간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 ‘일본 모든 지역 여행 금지 지역 확대 방안등이 최재성 위원장을 통해 알려지며 공론화되기도 했다.

한일 경제전 예산입법지원단은 원내 기구로 기존 민생입법추진단을 확대·개편해 예산과 법안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역할을 한다. 단장은 원래 민생입법추진단장이었던 윤후덕 의원이 맡고 지원단 안에 외교안보·기술독립·규제개혁 TF를 각각 두기로 했다.

대체로 여당 내 일본 대응 기구는 강경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양국 정부가 이렇게 신뢰 없는 관계를 맺어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이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도 다시 깊게 생각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경제보복에 맞대응을 선언한 이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수석급),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비서관) 3인방이 청와대의 관련 대책을 주도하고 있다.

김 실장은 3인방 중 가장 지위가 높아 청와대 대응을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현장 경험이 없어 실물 경제를 잘 알겠냐는 지적도 있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최측근이다. 김현종 2차장은 외교협상 전문가 인데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문재인정부 기조를 잡는 핵심인물이다. 3인방 모두 강경파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에서는 임시 성격이 강한 TF팀을 대신해 일본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경제보복에 대응해 대통령 직속 통상특위를 신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장으로 국제통상 전문가로 알려진 S씨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씨는 각종 방송과 신문사 및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대일본 관련 온건파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당내 일본특위에서도 실행위원으로 영입 의사를 타진했지만 이 인사는 기구명에 침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국의 일본에 대한 즉각적인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반대하고 있다.

일본 관련 온건파적인 성향을 가진 S씨를 청와대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청와대 다수가 일본 경제보복에 대해 강경노선을 견지하다 보니 일본 관련 소통 창구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특위를 만들어 대화와 타협의 창구를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불확실성국제관계 대비 자립도 높여

현재 신설예정인 국제통상특위를 대신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지난 88일 문 대통령과 100분간 회의를 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있다. 이 기구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통령 직속 경제자문기구로 작년 12월 이후 8개월만에 열렸으며, 현 정부 들어선 3번째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의도와 관련해 일본이 자신들을 추월하는 한국을 예전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 부의장은 한국이 개도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이 된 데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일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일본은 한일 간에 수직 분업 체제를 만들고 이를 지속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그러나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었고 일본은 자유무역 질서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한국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일본 당국자들 관점에서 볼 때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고, 이렇게 보면 지금 아베의 일본은 바로 그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회의가 종료된 이후 청와대 참석자 반응은 자문위가 내놓은 분석과 진단은 무난하지만 불확실성이 많은 국제통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해선 미흡하다는 평가가 다수였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실제 피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불확실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다라며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과도하게 한 나라에 의존한 제품에 대해서는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일본대응 기조와 한일관계는 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가 분수령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만약 진전이 없을 경우 문 대통령은 이날을 기점으로 탈일본 경제 독립의 날로 선포할 공산도 높다. 반면 일본과 사전 조율이 이뤄질 경우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될 수 있다. 일본 역시 문 대통령이 8.15 대국민 메시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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