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로선 ‘제2의 경제침략’으로 인식해 반일 감정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평화 경제로 일본을 따라잡자고 말해 야당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는 이참에 남북관계 개선으로 극일하자는 주장인데 너무 장기전으로 끌고가려는 시각이 엿보인다.

문제는 국민 감정을 정치적 수단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행태가 청와대뿐만 아니라 여권내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민주연구원의 ‘한일 갈등 보고서’ 유출 파문이다. ‘최근 한일 갈등이 총선에 (여당에게)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수준 이하의 보고서가 논란이 됐다. 야권에서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당 지도부는 유야무야시키는 분위기다.

오히려 이번 보고서 논란으로 이득을 본 것은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동안 민주당 작성 보고서에 기본 자료를 제공한 KSOI 여론조사기관이 위축되고 이 위원장이 대표로 있는 윈지코리아 여론조사기관이 향후 민주당 조사를 도맡게 됐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 선대본의 전략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친문’인사로 분류된다.

반면 KSOI 전 대표지만 실질적인 오너인 김갑수 전 대표는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선 후보 보좌역으로 정치에 입문한 친노 인사로 친문 주류와는 거리가 있다. 결국 민주연구원 내 총선 여론조사를 두고 결과적으로 친문 인사가 운영하는 기관이 우위에 서게 됐다는 게 여론조사 업계의 시각이다.

두 번째 사건은 서양호 중구청장이 일본 보이콧을 알리는 ‘노 재팬’ 배너를 무리하게 지역에 달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지역구민들은 불매 운동이 ‘관제 운동’이라는 인상을 주고 명동, 남대문 시장, 을지로, 세종로 등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 설치돼 일본 일반 시민들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상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취소 요구가 빗발쳤다.

서 중구청장이 ‘무리하게’ 반일 배너를 달게 된 이유가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항의라고 해명했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서 중구청장은 DJ정권 때 정계에 입문해 참여정부 행정관, 박원순 서울시장 조직특보, 손학규 대표 비서실 부실장, 안철수 전 대표 정무특보 등 누가봐도 친문 주류가 아니다. 운 좋게 지난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후보가 돼 당선됐지만 현 정권에서는 그게 전부다. 무리해서 현 정권 입맛에 맞추다가 망신만 당한 꼴이다.

지난 8일에는 여당 안민석 의원이 ‘애국가’를 친일잔재라고 주장하면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한마디로 작곡가 안익태 씨가 친일파이고 심지어 나찌도 찬양했다며 ‘더 이상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는 게 안 의원의 공청회 취지다. 결국 이 문제는 국가(國歌)를 바꾸자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가는 헌법이나 법률로도 규정해 놓고 있지 않다. 단지 대통령 훈령으로 돼 있다. 국가를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해 놓지 않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 의식과 더불어 안익태씨가 친일파라는 것까지 더해져 애국가에 대한 합법적 국가 제정 요구와 국가의 변경에 대해 그동안 역사학자 사이에서 제기돼 온 문제다.

그러나 안 의원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경으로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자 애국가를 바꾸자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애국가를 바꾸기 위해선 곡도 만들어야 하고 법적 절차도 필요하다. 단순히 반일 감정을 틈타 주권국가의 상징이자 영혼인 국가를 바꾸자는 주장은 포퓰리즘이다.

4선의 안 의원 역시 대표적인 당내 비문으로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 혹시나 친문 주류에 편승해 내년 공천과정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급조한 공청회를 개최한 게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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