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는 남편이 대통령직을 마칠 당시를 자서전 ‘비커밍’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그러다가 그 모든 게 끝났다. 끝이 오는 걸 알았어도, 마지막 몇 주 동안 북받치는 작별 행사가 일정에 가득했어도, 막상 마지막 날이 닥치니 모든 것이 그저 흐릿했다”지구상 최고 권력자의 자리도 마지막은 흐릿했었나 보다.

지금은 잊힌 이름이 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공직에 처음 출마한 것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였다. 남편이 “미셸, 내가 출마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미셸 오바마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유는 우리가 익히 예상하는 것이다.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적당한 혐오와 집을 자주 비워야 한다는 사정 따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셸 오바마는 남편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정치라고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셸 오바마가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미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 보겠다는 생각을 정치적 향상심으로 불태워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고지까지 올랐다.

모든 정치인들이 다 오바마처럼 고상한 이상을 품고 정치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설사 오바마 못지않은 이상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적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한때 이민자의 나라 미국 통합의 아이콘이었던 오바마도 지금에 와서는 그리 성공한 대통령으로 취급받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후임이라는 점에서 점수 깎아먹을 여지는 차고 넘친다.

첨단부품소재 수출 규제 결정으로 한국과 세계 경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에게 정치는 가업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지금의 일본 정치에 자민당 체제를 만들고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대신을 지낸 유력한 정치인이었고, 아베는 아버지 밑에서 비서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가업을 이었다고 해서 아베가 오바마처럼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고상한 이상이 없이 정치에 뛰어들었을 것이라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 사회의 소수자라 할 흑인인 오바마에게 미국사회는 바꿔야 할 것이 가득한 세상이었을 테고, 일본의 귀족 정치가문 출신인 아베에게 일본사회는 꾸준히 관리해 나가야 할 자신들의 봉토였을 것은 짐작해 볼 수 있다.

내년 4월이면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많은 정치 지망생들이 자신의 삶과 돈과 인맥을 갈아 넣어 가면서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가 다 오바마처럼 고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대 수준을 낮추고 낮춰도 정치적 욕망만 앞세워 유권자를 볼모 삼을 후보를 만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있는 후보를 분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주에 서울 중구청장이 명동, 청계천 지역에 ‘노 재팬’ 깃발을 걸었다가 시민들의 비판에 못 이겨 거둬 들이는 일이 있었다.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일이지만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요즘 정치의 대세라고 하지만, 그는 집권여당 소속이라는 자각도 없고, 선출직 공직자의 책임감도 없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대 국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노 젓는 정치인은 넘쳐난다. 일부 의원들은 언론보도로 이름값이 높아지는 것을 즐기면서 정치적 욕망을 키우는 일에만 몰두한다. 미셸 오바마는 미국인들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품위’를 지켜 주길 기대했다. 내년 선거에서는 노 젓느라 팔뚝만 굵어진 정치인이 아니라 품위 있는 국민의 대표가 될 사람에게 투표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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