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경제보복 조치 이후 민간에서는 불매운동이 전 분야에 걸쳐 들불처럼 번지고 각종 규탄대회가 서울이나 지방 할 것 없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서도 마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대응책이라고까지 소문이 나 있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를 파기해야 한다거나 우리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해야 한다는 등 강경 발언과 조치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언제나 분노는 민초들의 몫이었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실질적인 대응을 하는 것도 민초들 몫이었다. 그런 대한민국 국민의 성난 민심 때문이었을까.

갑작스런 일본의 조치로 수세에 몰리는 듯 보였던 전세가 역전이라도 되듯이 지난달 일본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국민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여파로 ‘유니클로’, ‘무인양품’ 등 일본 브랜드의 모바일 앱 사용자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대마도조차도 ‘노노 재팬’ 캠페인의 직격탄을 맞아 한국 관광객이 급감하는 바람에 관광객의 필수 코스였던 빵집조차 아예 문을 닫고 렌터카 업체도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한다. 우리 국민의 일본 내 카드 사용액도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갑작스런 일본 정부의 선제 공격으로 촉발된 양국의 관계 악화로 인한 피해를 일본도 고스란히 입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한민국이 입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1,300여 개 품목의 소재가 화이트 리스트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코스피, 코스닥 등 주식 시장이 급락하면서 코스닥 시장은 3년여 만에 처음으로 ‘사이드카’가 발동되었고, 투자자들의 신음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해당 기업과 관계 기관은 수출 규제의 강도와 기간에 따라 올 하반기 수출 규모가 격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속히 풀리지 않을 경우, 수출 허가와 심사로 소요되는 시간이 수출 신청 건마다 많게는 90일 이상 소요돼 사실상 공정을 마비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양국이 일촉즉발의 강경 일변도 정책에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시행령을 공포하면서도 추가적인 개별허가 품목은 지정하지 않은 데 이어, 경제보복 조치 시행 후 처음으로 일부 수출규제 품목인 감광제의 한국 수출을 허가했다.

한국 정부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양국이 확전을 자제하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고 한국 정부도 향후 일본 조치를 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측된다.

민족 감정까지 드러내며 격하게 치닫던 우리 정부 여당에서도 ‘속도 조절론’이나 ‘수위 조절론’ 등 현실을 감안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일본이 이 사태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며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본 측도 마이니치 보도에 따르면 "예상 이상으로 소동이 커졌다"며 수출규제 조치에 ‘오산’이 있었음을 일본 정부 관계자가 인정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부작용에 대한 회의감이 일본 내에서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이라고 하면 흔히 ‘동해(同害)보복 원칙’을 떠올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식의 ‘동해보복’의 감정적 대응이 지속될 경우 피해를 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영원히 먼나라가 되지 않고 공생공존하는 “함무라비의 역설”을 만들어 내길 민초들은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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