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전회장이었던 정태수씨가 본지 카메라에 잡혔다. 정씨는 지난해 한보철강 매각 예비입찰에 응찰했다가 쓴잔을 마셨다. 5월에는 채권단에 입찰자격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등 재기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단절한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정씨는 지난 1년 6개월여 동안 틈나는 대로 건강을 챙기며 재기를 다져온 것으로 취재결과 나타났다. 지난 30일 일요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삼청공원에 정태수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은 비교적 괜찮아 보였다.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정씨를 지탱하는 지팡이만 없었다면 60대의 건강한 노신사로 착각했을 정도다.인근 가게에 따르면 정씨는 주로 주말에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기자를 만나기 한 주 전인 지난 24일에도 손녀들과 함께 이곳에서 산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휠체어에 몸을 의존했다. 주변에는 항상 수행원 4~5명이 정씨를 보좌했다. 그러나 이날은 여성 두 명만 대동한 채 공원을 찾았다. 취재 결과 이 여성들은 정씨의 셋째 여동생과 간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마다 삼청공원서 체력관리

그러나 아직까지 낙관할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2년 정도가 지나야 완쾌가 됐는지 알 수 있다”면서 “요즘도 1~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들러 정기검진을 받는다”고 말했다.정씨는 기자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재기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재기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고 잘라 말했다. 그는 “‘萬里風來 泰山不動(만리풍래 태산부동) 千蓮水住 海父量(천련수주 해부량)’이란 중국 고사성어가 있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태산은 끄떡없으며, 천련수가 흘러내려도 바닷물의 양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의미”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재기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틈나는 대로 이곳에 와서 운동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일단은 몸을 만들어야 한다. 건강이 우선이다. 그 다음이 사업”이라면서 “당분간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실제 정씨는 30여분 동안 삼청공원을 걷는 동안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옆에 있던 간호사가 부축을 하기도 했지만,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질문공세를 퍼붓는 기자에게 농담을 건넬 정도로 여유를 보였다. 재기에 대한 그의 의중은 은연중에 내비친 불만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밀린 세금을 갚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니겠냐. 그러나 출국이 금지돼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순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돈 벌고 싶어도 매인 몸…힘들어”

정씨는 자신과 관련해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각종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정씨는 지난 9월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강릉 Y대학의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적발돼 기소됐다. 비슷한 시기 법원은 정씨와 3남 보근씨(전 한보철강 부회장)에게 한보철강이 발행한 보증사채의 연대보증 책임을 물어 1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와 관련해 정씨는 “억울한 것은 전혀 없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짧게 언급했다.

그러나 정씨는 현재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곳이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저택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 저택은 지난 2001년 부동산 업자 정모(55)씨가 정 전 회장의 부인 변중석씨로부터 55억원에 매입했다. 정씨는 지난 2003년 10월께 이 집에 전세로 입주했다. 전세 자금은 10여억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세금이 체납된 정씨가 여전히 호화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정씨는 “정주영 회장의 집인 줄은 전혀 몰랐다. 보증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일문일답“지금은 건강이 우선”

- 건강은 어떻나.
▲ 보시다시피 많이 좋아졌다.

- 대장암 수술 결과가 좋다고 들었다.
▲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앞으로 2년 동안 후유증이 없어야 완치됐다고 볼 수 있다. 1~3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 삼청공원엔 자주 나오나.
▲ 틈나는 대로 이곳에 나와 운동을 하는 편이다.

- 재기 계획은 있나.
▲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몸이 건강해야 재기도 가능하다. 삼청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세금 체납이 많다.
▲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출국 금지로 몸이 묶여있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지난해 채권단으로부터 한보철강 입찰도 거절당했다. 돈을 벌어야 세금을 갚든 할 것 아니겠나. 이것은 모순이라고 본다.

- 최근 정주영 전 회장 저택으로 이사했는데.
▲ 일각에서는 고액 체납자가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셋방살이가 무슨 호화생활인가. 이 집이 정주영 회장 저택인 줄도 전혀 몰랐다.

- 최근 강릉대학 교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 거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 법원으로부터 10억원 지급 판결을 받았다.
▲ 문제가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 불만은 없다.

- 향후 계획은.
▲ 일단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2년 정도면 재기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있나.
▲ 그렇다. 그러나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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