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ing Out Like A Local In Vienna]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인정받은 비엔나.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까? 뭐하고 노는지도 궁금했다. 여정의 대부분을 로컬 라이프를 탐하는 데  공들인 이유다. 비엔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오래된 커피 하우스의 낭만, 그리고 눈과 입이 즐거운 맛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찬란한 유산만큼이나 흥미로웠던 비엔나의 매일을 담았다.

낭만의 도나우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푸른 도나우는 비엔나의 오아시스다. 구시가지의 중심 슈테판 광장에서 지하철로 7정거장만 가면 금세 목가적인 풍광이 드리운 알테 도나우가 나온다. 범람하던 옛 물길을 틀어 새로운 노이에 도나우를 만들었고 원래 도나우 강이었던 이곳 ‘올드’ 도나우는 유원지가 됐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 같지만, 비엔나 사람들에게 알테 도나우는 놀이터다. 마치 여름처럼 무더웠던 지난 5월의 끝자락, 강가에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계절을 벌써 찾아 나선 헐벗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엔나 사람들은 보트를 빌려서 도나우 강을 한갓지게 탐험하거나 강변의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수상 테라스가 있는 알테 도나우 강가의 레스토랑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도나우 강과 연결되는, 잘 정리된 운하 도나우카날은 강렬하고 거친 그라피티가 양옆의 벽 위에 휘몰아친다. 비엔나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사실 충격적이었다. 고상하고 우아하기만 할 줄 알았던 도시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거친 스트리트 문화. 게다가 비엔나에서 가장 클래식한 분위기의 구시가지 옆에 딱 붙어 흘러가기까지 한다. 도나우카날을 따라 들어서 있는 노천 바와 라운지가 특별한 이유는 비엔나 트렌드의 핫스폿이기 때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한낮의 활기찼던 풍경을 싹 바꿔 신나는 DJ 음악과 글래머러스한 칵테일로 채워진다. 물론, 청순한 대낮에 산책하기도 훌륭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스트레스를 푸는 비엔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 도나우카날로 향할 것. 

예술에 취하다

“오늘은 관람하지 않으시는 게 어떨까요? 1시간 정도 뒤에는 문을 닫거든요.” 정중하게 입장을 거절당한 곳은 레오폴드 박물관이다. 현대 오스트리아의 훌륭한 회화 작품 5천여 점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그것도 에곤 실레의 주옥같은 220점의 작품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보겠다고 했으니 아마 어이가 없었을 테다. 사실 미술사 박물관의 입구에서도 한차례 혼이 났다. 일정이 급해 아름답기로 소문난 카페만 슬쩍 둘러보고 나갈 계획이었는데 직원이 나를 타일렀다. “박물관 입장권을 사야 카페도 방문 가능합니다. 그런데요 손님, 여기를 한번 보십시오. 몇 시간을 머물러도 아깝지 않겠죠?” 결국 두 박물관 모두 나중에 시간을 쪼개어 다시 찾아가야만 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과 함께 유럽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비엔나의 미술사 박물관. 루벤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뒤러, 라파엘, 티치아노 등 일일이 이름을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사실 비엔나에는 박물관만 100개 이상. 욕심을 전부 채우기란 쉽지 않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애호가들은 특별히 애정 하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연간 회원권을 끊어 수시로 드나든다고 한다. 반대로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의 입장은 늘 선택의 기로에서 슬플 때가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고 싶다면 벨베데레 궁전으로 달려가고, 현대예술의 팬이라면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인 뮤제움 콰르티어에 올인 해야 하겠다.  

훈데르트바서의 지상낙원 

집이 살아 숨을 쉬고 있나? 훈데르트바서하우스는 마치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나무 넝쿨에 창문을 뚫고 자란 나무와 질서 없이 뒤섞여 있는 외벽의 재료나 모양이나 색감까지도. 비엔나 3구에 이런 괴짜스러운 집을 지은 이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며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그가 추구했던 철학이 투영된 건축물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채가 더 있다. 공공주택 쿤스트 하우스다. 자유롭고 대담한 컬러와 ‘네모난 건물’을 탈피한 유기적인 형태,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 자체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지만, 비엔나의 시의회가 그에게 도시 공공 주택의 리모델링을 의뢰한 것도 꽤 의외다. 우리가 보통 예상하길, 공공 주택이라고 하면 기계로 찍어낸 듯 네모 상자같이 재미없는 건물이니 말이다. 참고로 비엔나는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도시를 지향한다. 그중 주거 복지 정책은 비엔나의 꽃이다. 이를 테면, 시민의 약 60퍼센트가 보조금이 지원되는 이러한 임대주택에서 거주한다고 한다. 건축을 통해 실현하는 훈데르트바서의 지상낙원. 메마른 건축물에 독특한 방식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건축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훈테르트바서는 비엔나라는 도시의 속살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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