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활약” 이어지는 극찬

류현진 [사진=뉴시스]
류현진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류현진은 데뷔 전이었던 고교 시절 큰 주목을 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고교 2학년 시절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며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처음 야구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 2005년 6월 7일 열린 청룡기야구 성남고등학교와의 8강전 경기에서다. 그는 당시 1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당시 류현진이 소속된 인천 동상고등학교는 39년 만에 6번째 청룡기 우승을 이뤄냈다. 류현진은 우수 투수상을 수상하며 이후 계약금 2억 5000만 원에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야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부상 딛고 화려하게 부활한 류현진

류현진은 지난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에서 2차 지명 전체 2순위 지명으로 한화에 입단했다. 이 선택은 한화 이글스 신인 드래프트 역사에서 최고의 스카우트로 손꼽힌다. 그해 곧바로 데뷔한 류현진은 첫해부터 다승, 탈삼진, 방어율 1위를 석권하며 신인상과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그는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2012년까지 한화에서 류현진은 통산 98승(5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2013년 LA 다저스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큰 무대에 진출한 류현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반신반의’였다. 많은 야구 팬들은 한국의 ‘괴물’이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통할지 궁금해 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와 동시에 실력을 증명해 냈다. 2년간 28승 15패, 3.17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자연스레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후 류현진은 고등학교 시절 당한 부상과 비슷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 시기는 류현진에게 ‘최악’으로 기억될 것이다. 왼쪽 어깨 수술을 받고 2016년 7월 복귀한 류현진은 단 한 차례의 선발 등판 이후 다시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됐다. 2년간의 공백에 두 차례의 수술을 거친 류현진이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팬은 많지 않았다. 특히 어깨 부상은 투수에게 치명적인 결점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그는 지독한 재활 과정을 견뎌내고 마운드에 복귀했다. 오히려 새로운 무기까지 장착했다.

재활하며 오히려 ‘신무기’ 습득

류현진은 원래 3가지 구종을 던지는 투수였다.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법, 커브 등이 그의 주 무기였다. 하지만 그는 부상 기간 커터와 투심 패스트볼을 더해 5가지 구종을 완벽히 구사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특히 믿기 어려운 수준의 완급 조절로 장점인 체인지업은 ‘달인’ 수준으로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류현진 스스로도 본인을 ‘제구형 투수’로 규정할 정도다. 볼을 던지는 것을 아끼지는 않지만 볼넷은 결코 쉽게 내주지 않는다. 150km/h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145km/h대의 구속으로 타자들을 요리할 수 있는 데는 완벽한 제구력의 힘이 컸다. 쓸데없는 자존심도 부리지 않았다. 힘이 좋은 타자들을 상대로 플라이볼 유도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땅볼 비율을 50%로 늘렸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성장의 기회로 삼고, 한 가지 무기를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무기를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실리적인 투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경이롭다” 평가 받는 평균자책점

올 시즌 류현진의 평균 자책점은 ‘1.45’다. 이는 뛰어남을 넘어 경이로움에 가까운 수치다. 기록은 지난 12일 세워졌다. 이날 류현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리조나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5피안타 1볼넷 1사구 4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팀의 9-3 승리를 이끌었다. 세 번째 도전 만에 시즌 12승을 따낸 데 이어 한미 통산 150승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평균자책점은 1.45까지 떨어졌다. 1.45라는 평균자책점은 현대 야구에서 불가능한 수치로 꼽힌다. 라이브 볼 시대가 시작된 1920년 이후 개막 22경기 기준 역대 5번째로 낮다. 밥 깁슨(0.96·1968년)과 루이스 티안트(1.25·1968년), 비다 블루(1.42·1971년), 로저 클레먼스(1.450·2005년)를 제외하면 모두 류현진 밑에 있다. 미국 매체 LA 타임스는 같은 날 “류현진은 다저스 출신 스타 중 한 시즌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루브 마쿼드(1.58·1916년)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며 “평균자책점 2위 마이크 소로카(애틀랜타)와 격차를 1점 정도까지 벌렸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류현진의 최종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류현진이 현재 사이영상(Cy Young Award)의 유력 수상 후보임은 분명하다.

사이영 상이란?

사이영 상은 메이저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메이저 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 야구 리그에서 가장 잘한 선수가 사이영 상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계 최고의 상인 발롱도르(Ballon d'or)와 비교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상은 사이 영이라는 선수의 이름을 따 1956년 제정됐다. 사이 영은 프로야구 역사상 통산 최다이닝과 최다승 등 수많은 대기록을 가진 야구계의 ‘전설’이다.

사이영 상은 시즌이 끝난 뒤 기자단의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팀당 두 명씩 배정된 야구 전문 기자들이 투표하는 방식이다. 수상자 발표는 월드시리즈 종료 후에 한다. 1956년 초대 수상자 돈 뉴컴(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을 시작으로 톰 글래빈(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로이 할러데이(필라델피아 필리스),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사이영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다만 사이영 상이 아시아 선수의 품에 안긴 사례는 아직 없다. 메이저 리그에 아시아계 투수가 진출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사이영 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은 지난 2006년 왕젠민(대만)과 2013년 다르빗슈(일본)이 기록한 2위다. 이 외에는 1995년 노모 히데오(일본)와 2008년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4위, 2013년 이와쿠마 히사시가 3위를 차지한 게 전부다. 특히 한국 국적 투수로서는 사이영 상 후보로 표를 얻은 선수가 없었다. 한국 야구 팬들이 류현진의 수상 가능성에 기대를 숨기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 현지에서도 류현진의 사이영 상 수상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 매체 ‘12UP’은 13일 “류현진의 평균자책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류현진이 사이영 상을 놓치는 것은 엄청난 부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MVP 후보로도 거론돼야 한다”고 보도했다.

애틀랜타 원정-뉴욕 양키스 홈이 마지막 시험대

현재 LA 다저스의 로테이션 순서를 고려해 보면 류현진은 오는 18일 애틀랜타 원정 경기와 24일 뉴욕 양키스와의 홈 경기에 등판하게 된다. 두 팀 모두 메이저 리그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팀인 만큼 막강한 타선을 보유하고 있다. 애틀랜타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쿠냐와 프리먼 같은 강타자들의 활약이 쏠쏠하다. 양키스도 마찬가지다. 빅리그 전체 최다 득점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를 달리는 양키스에는 저지와 산체스, 토레스 등 홈런 타자들이 줄을 서 있다. 이처럼 강팀을 연달아 상대하는 다음 두 경기가 류현진 사이영 상 수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러나 류현진은 덤덤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이영 상은 내가 받을 수 있다고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무리하면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오버페이스 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평정심 유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팬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올 시즌 류현진이 야구 역사에 등장하는 어떤 전설들의 전성기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부상을 이겨내고 더 놀라운 모습으로 부활한 류현진이 시즌 말 어떤 기록을 세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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