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기주의’ vs ‘생존권’ 논란 벌어진 양구

2사단 해체 철회 촉구하는 양구군민들 [뉴시스]
2사단 해체 철회 촉구하는 양구군민들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해 7월 27일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을 발표했다. 인구 감소 등으로 국방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군 부대를 상황에 맞게 개편하겠다는 것이 개혁의 핵심 과제였다. 당시 발표된 국방개혁 2.0에 따르면 지난 1월 9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와 제3야전군사령부를 통합해 창설한 지상작전사령부 예하에는 6개 군단(기존 8개)과 1개 기동군단이 편성된다.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소속이었던 3군단과 8군단은 하나로 통합될 예정이다. 제3야전군사령부 소속 1군단과 6군단도 하나의 군단으로 합쳐진다. 또 전방을 지키던 5개 기계화보병사단 중 26사단과 8사단은 통합됐다. 20사단과 11사단도 합쳐질 예정이다. 30사단은 여단급 규모로 축소되며, 27사단과 23사단, 2사단은 해체되거나 재편되는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국방개혁 2.0 일환으로 2사단 해체 땐 군인가족 7000여 명 이탈

양구 군민 “수십 년간 희생만 당한 접경지역 주민 무시하는 처사”

군은 오는 2022년까지 인구 감소로 인해 육군 병력 11만 8천여 명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병사가 줄어들면 자연히 지휘관 자리도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군은 불필요한 장군의 숫자를 줄이는 등 ‘다이어트’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개혁 2.0에 포함된 부대개편 방안 역시 병력 감소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하고 효율적 지휘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군의 부대개편 시도는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사단 해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양구와 인제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2사단(노도부대)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국방부는 2사단을 해체한 뒤 사단 사령부와 특공여단들을 묶어 신속대응사단을 만들 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보병 병력 중심인 2사단 내 3개 연대는 사라지거나 인근 21사단·12사단에 통합된다.

양구 군민들 “존립위기 처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양구군 주민 800여 명은 지난 9일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 모여 2사단 해체 철회 요구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2사단 해체철회 범군민추진위원회’는 “군 감축은 생존권 박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접경 지역 경제 대부분을 군 부대 소비 지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사단 해체철회 범군민추진위원회는 “국방부가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2사단의 부대해체 및 재편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며 “군 부대 재편 및 병력 감축에 맞춰 휴전선 접경지역에 대한 재정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국방부가 2사단을 해체하면 7000명의 장병들이 사라져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면서 “양구가 사라지느냐 마느냐 하는 존립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또 군 측은 2사단이 해체될 경우 인구 2만 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했다.

육군 3군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양구 지역에 군이 기여하는 경제 효과는 ▲군인 가족 생활비 290억 원 ▲보통교부세 101억 원 ▲농산물 및 물품 구매 92억원 등 총 60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주민 대부분이 군 장병들의 지출에 의존해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부대 납품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지역 농축산인들은 강원도민일보에 “몇 개월 전부터 이미 부대에 납품될 물량이 계약 단계에서 30~40%정도 줄었다”며 “병력 감축이 사실상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이기주의” 비판도

양구 군민들의 부대 해체 철회 요구가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접경 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군 장병들에게 시세보다 비싼 가격을 물려 돈벌이를 해 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구에서 군 복무를 마친 A(28·남)씨는 “양구 물가가 절대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며 “접경 지역 주민들이 군 장병들에게 조금 더 저렴하게, 조금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동정 여론이 많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양구 군민들의 상경 집회 기사에서는 비판적인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군인을 호구로 본 결과’라든가 ‘군인을 돈주머니라고 생각하고, 가격을 올려서 주머니 털어먹었다. 자업자득이다’라는 내용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양구는 2011년 3월 외박 나온 장병 2명이 지역 고등학생 무리에게 무차별 집단 폭행 사건을 당했던 곳이다. 당시 장병 중 한 명은 전치 6주의 치료를 요하는 골절상을 입었다. 가해자들은 국민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장병들이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건 전달에도 다른 부대 장병 4명을 다치게 하는 등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 초반 지역 여론은 미성년자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장병들의 부상과 지역 여론에 분노한 제21사단, 제2사단 지휘관들은 양구군 일대 외출 외박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수천 명의 군인이 사라지자 양구군 경제는 순식간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지역 주민들과 군이 사과와 함께 바가지요금 근절·폭행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군 부대 인근 주민들의 이미지를 추락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힘 보태겠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13일 2사단 해체와 관련해 접경 지역 주민, 소상공인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도움을 약속했다. 이날 황 대표는 춘천축산농협 양구지점에서 열린 접경지역 주민·소상공인 간담회에 참석해 “아무 대책 없이 2사단이 떠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의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라며 “한국당이 구석구석 다니고 챙겨서, 각각의 어려운 사정을 정부와 국회에서 돕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그는 “이 지역은 그동안 접경지역으로 많은 문제가 있던 것으로 안다”며 “그나마 지역에서 일할 기회와 소비에 기여가 되던 2사단이 해체되면 힘든 상황이 가중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또 “허심탄회하게 어려운 상황을 전해주면 한국당은 위기에 선 대한민국을 되살리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강원도는 이번 2사단 해체와 관련해 ‘폐광지역지원특별법’ 수준의 대폭 지원을 요구하기로 했다. 접경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접경지역특별법’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강원도는 양구와 화천, 인제 등을 관통하는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와 중앙고속도로의 철원 연장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접경지역 특화사업 발굴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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