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모독죄”라는 죄목이 있었다.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을 때 처벌하던 형법상 규정이었다. 이는 국가모독 등의 행위를 처단하고 국민의 긍지를 높이며 국가의 안전과 이익 및 위신을 보전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그러나 악용의 우려 등으로 30년 전에 폐기되었고, 지난 2015년에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은 조항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북한의 공식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온갖 조롱 섞인 언어를 총동원하며 맹비난했다. “북한의 최근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았다”며 대북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비판을 방어해 온 문 대통령에 대해 ‘허무한 경축사’이자 ‘정신구호의 나열’이라고 비난했다. 한술 더 떠 ‘평화경제’를 추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금도를 넘어서는 국가원수에 대한 망발로 도발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정형화된 레퍼토리인 양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또다시 발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며 중단을 촉구하는 게 고작 전부였다. 그러자 청와대와 군이 대책 회의를 갖는 것을 조롱하듯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고 있다”며 힐난해 왔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잇따른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대남 비난 공세를 의도적으로 피하듯 대해오면서 “이 고비를 잘 넘어서면 한반도의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 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다소 낭만 어린 희망가를 부르기도 했다.

우리 정부의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대응에 더 큰 용기를 얻기라도 한 것일까? 모욕도 모자라 조평통은 “앞으로의 조미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목을 빼들고 기웃거리고 있다”고 조롱하면서 남한 당국자들과 더는 할 말도,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야당 대표나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민감하다 싶을 정도로 사사건건 비판과 비난을 해 왔다. 특히 대일본 경제 전쟁에 있어서는 ‘친일파’ 관련 인신모독성 발언까지 여야 간 상호 공방을 펼쳐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유독 북한의 비난에 대해서는 한없이 쪼그라들기만 하는가. 이보다 더한 “국가모독”이나 “국가원수모독”이 어디 있단 말인가.

“금도를 넘는 북한의 비난은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의 일관된 노력에 북측도 적극 호응해 달라고 촉구하는 우리 당국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

국민의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며 차마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막말 대잔치를 이어가는 만행 앞에서 국민들의 자존심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져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 판문점 선언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남북 대화 동력이 상실한 것이 남한 당국자의 ‘자업자득’이라는 북측의 비난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 것은 유독 나만 한여름 더위를 먹은 탓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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