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로 소유권 공방 끝’ 하지만 문화재청은 빈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우리나라 문자인 ‘한글’에 대한 국민적인 사랑이 깔려 있다. 최근 개봉돼 논란이 됐던 영화 ‘나랏말싸미’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경북 상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상주본을 반환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일고 있다. 상주본 소유를 둘러싼 논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주고 학생들 반환 서명운동 펼쳐...국민청원도 등장

상주본 가치 최소한 1조 이상? 반환 사례금 1000억?

 

상주고등학교는 지난 12일 교내에서 2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 서명운동은 전교생 대상이다.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56) 씨와 문화재청의 소유권 공방이 11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주본 공개와 관련해 서명운동이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주고 학생들은 상주본 반환 서명운동과 함께 ‘대한민국의 저력은 한글에서 나온다’는 한글만세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서명 캠페인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청와대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등 상주본이 국가에 반환될 수 있도록 나서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상주본의 관리 주체가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훈민정음 상주본을 직접 보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대한민국의 힘과 저력은 한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글 창제의 원리가 정리된 국보급 문화재 훈민정음 상주본을 개인이 소장한 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도 난 만큼 문화재청은 보다 적극적으로 상주본 반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문화재청은 소장자에게서 상주본을 강제 회수할 법적 근거를 확보했지만,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상주본의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상주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강제집행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상주본, 학술적 가치는?

 

한글 창제의 배경과 원리 및 사용법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것이 유일본이었지만 2008년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인 배 씨가 다른 해례본을 공개하면서 해례본은 2개가 됐다.

배씨가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상주본이고, 이 상주본은 세상에 빛을 본 지 1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여정은 파란만장하다.

상주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면서 표제와 주석이 16세기에 새로 더해져 간송본보다 학술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주본은 그동안 실제 모습이 공개되지 않다가 2017년 4월 10일 언론에 공개됐다. 배 씨가 공개한 사진 속 상주본은 전체 중간 앞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아래쪽이 불에 그을려 훼손된 상태였다. 상주본이 불에 탄 이유는 2015년 3월 배 씨 집에 불이 났기 때문이다.

당시 배 씨가 상주본을 공개한 이유는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배 씨는“선거관리위원회에 재산을 등록할 때 실물 확인이 되느냐는 등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빛을 보게 하기 위해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다”고 덧붙였다.

배 씨는 2008년 7월 골동품 판매상 조 씨의 가게에서 30만원 상당 고서적을 살 때 상주본을 몰래 끼워 넣어 가져왔다. 조 씨는 상주본을 반환하라며 그해 12월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5월 상주본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확정됐다.

이와 별도로 배 씨는 상주본 절도 혐의로 2011년 9월 재판에 넘겨졌으며, 1심은 배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심과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조 씨는 2012년 5월 국가에 상주본 소유권을 기증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숨졌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17일 상주본 소장자인 배 씨에게 상주본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배 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청구이의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대법원이 확정한 데 따른 것이다.

문화재청은 배 씨를 만나 문화재청 입장이 담긴 반환 요청 문서도 전달했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은 2012년 숨진 원소유자 골동품업자 조용훈 씨로부터 받아 현재 국가 소유”이며 “그 동안 여러 차례 문서와 면담을 통해 반환 요청을 했으나 아직까지 반환하지 않고 있어 문화재 보존 상태가 우려된다”는 뜻을 전했다.

또 “계속 은닉하고 문화재를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92조(손상 또는 은닉 등의 죄)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렸다.

문화재청 관계자와 면담한 배 씨는 문화재청의 요구사항은 알겠으나 자신도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배 씨, 대법원 판결 무효 소송

제3 독지가가 배상?

 

배 씨가 최근 나온 대법원 판결에 대해 무효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 즉 문화재청에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이달 중 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무효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문화재청 측과도 지난달 판결이 나온 이후 접촉을 가졌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배 씨는 상주본 사례금과 관련 과거 1000억 원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상주본 반환에 1000억 원을 주장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해온 말이다. (나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한 것인데, 현실적으로 1000억 원이 가능한 금액은 아닐 수도 있다고도 본다. 그렇다고 얼마를 달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상주본 사례금 1000억 원은 그가 문화재청이 상주본 가치를 최소한 1조 이상 간다고 본 것을 기준으로 두고, 10분의 1 정도 가치로 정해 주장하는 액수다.

한편 지난달 배 씨가 제3의 독지가와 상주본에 대해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상주시 등에 따르면 배 씨가 훈민정음 상주본을 국가에 귀속하는 대신 합당한 보상을 국가 대신 제3의 독지가가 배상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 씨는 제3의 독지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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