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4호(정동영 편)에 이어 이번 호에는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주자 이명박 서울시장의 ‘용인술’을 싣는다. 이 시장은 오랜 기업인으로서의 자세가 몸에 밴 탓인지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선호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 시장의 정치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참모들도 예외는 아니다. 정책이면 정책, 정무면 정무 등 관련 분야에 똑 떨어지는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적재적소에 포진해 있다는 것.

거짓말하는 사람 가장 싫어해

‘현장’을 중시하는 것 역시 ‘CEO 형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 시장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특히 이 시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서울시청 고위 공무원들은 이 때문에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철저한 현장시찰을 통한 보고가 아니라면 으레 “직접 (현장에 가서)확인했습니까?”라는 말이 돌아온다고.그렇다면 이 시장은 어떤 사람을 멀리할까. 이춘식 정책특별보좌관(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신뢰’를 가장 중시하는 이 시장의 한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편, ‘차기 대통령감’으로 인기 급상승중인 요즘 이 시장의 참모들을 만나면 그에 대한 ‘진실’과 ‘오해’에 대해 해명하느라 말이 길어진다. 바로 ‘이명박은 독선적’이라고 굳어진 이미지 때문이다. 한 측근은 “사실 이 시장은 남의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이 시장만의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참모들의 말을 경청한 후엔 그 의견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말로 근거도 없이 던지는 참모의 의견을 받아들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음 순서는 일의 그르침. 그는 “그렇다 해도 ‘문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 시장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참모들 사이에서 ‘이 양반한테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되겠구나’라는 공통된 의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참모들 역시 이 시장처럼 말에 앞서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장의 인사 스타일은 한 마디로 ‘까다롭다’. 인간적인 ‘신뢰’에 더해 업무에 있어서도 ‘전문성’까지 갖춘 사람, 게다가 항상 ‘현장’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하며 말에 있어서도 ‘신중’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춘식 특보는 “들인 사람에겐 믿고 일을 맡기지만, 들일 때는 신중을 기하는 편”이라고 진단했다.

핵심참모 2002 캠프

때문에 서울시청 주변에선 인선에 대한 소문만 무성할 뿐, 확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청계천 완공을 계기로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그에 대한 지지도에 발맞춰, 정치권 주변에선 이런저런 연줄을 동원해 그에 선을 대려는 인사들 얘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 시장이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 곧 뒤를 잇는다.

한편, 까다로운 만큼 한 번 ‘내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면 ‘끝까지 간다’는 게 측근들의 한 목소리다. 강력히 대권도전을 시사함과 동시에 최근 정무팀을 보강한 이 시장이 새로 합류한 이들에게 강조한 것도 바로 ‘신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인연’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 주변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을까. 지근거리에서부터 살펴보자면 이춘식 특보와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가 눈에 띈다. 이들은 이 시장이 정치권 입문 첫 둥지였던 ‘민자당’ 원외지구당위원장 출신으로 이 시장과의 인연은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장은 14대 총선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이 시장의 정치권 1세대 측근인 것이다. 이 특보는 이 시장 재직 중 2대 정무부시장을 지냈으며, 지난 8월 정책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 교수 역시 이 시장 재직 중 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아 가까이서 보좌한 바 있다. 이 시장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정무팀장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 박 팀장은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후보 비서실차장으로 활동, 이후엔 시장직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팀장과 함께 이 시장의 일정조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희중 비서관도 오랜 기간 이 시장과 알고 지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측근그룹 다음으로 정무비서진이 ‘이명박의 사람들’로 꼽힌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대선후보 경선캠프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정태근 정무부시장을 중심으로 박영준 팀장, 조해진 정무보좌관, 윤상진 정무비서관 등이 포진해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정태근 부시장은 지난 17대 총선때 서울 성북갑에 출마했다 낙선했으며 2002년 서울시장선거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활동한 인연이 있다. 이를 계기로 이 시장과 허물없이 지내다 이춘식 특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조해진 보좌관은 한나라당 부대변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정치특보 출신이며, 윤상진 비서관은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편, 이 시장의 대외연설문을 책임지고 있는 강용진 서울사랑 편집주간도 눈여겨볼 인물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근무했던 강 주간은 이 전 총재의 연설문을 작성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인맥구축 현재진행형

다음은 원내 인사들. 15, 16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이 시장의 원내 인맥은 그리 두텁지 않다. 13년의 정치인생, 짧다 할 수 없지만 심한 굴곡을 겪었기 때문이다. 원내에 형성된 인맥도 따지고 보면 대권주자로서의 반열에 오르는 데 시발점이었던 2002 지방선거, 이 시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을 때 그의 선거캠프에 속했던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차기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당내 대결을 펼치고 있는 비주류 3선 멤버의 핵심인 이재오·홍준표 의원. 이들 역시 서울시장 선거 과정, 이 시장의 동문(고려대)으로 연결돼 있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도 빼놓을 수 없는 인사들이다.

특히 정 의원은 이 시장의 복심(腹心)을 자임하며, 원내에서 이 시장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경선 당시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소속으로 이 시장을 도왔으며, 이후 이 시장 재임 첫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17대 총선에 나서기 전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부시장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원내 인맥 구축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지원군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는 당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편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 그룹도 눈에 띈다. 우선 2002 지방선거 당시 홍보기획업무를 총괄했던 강승규 서울시청 홍보기획관, 교통 분야 조언 전담자인 제타룡 전 도시철도공사 사장, 조광권 교통회관 교통연수원장 등이 이 시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다. 또 백용호 교수의 뒤를 이은 강만수 시정개발연구원장(전 재정경제부 차관)도 ‘이명박의 사람’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학계 인맥은 차기 주자들 중 두터운 편에 속한다는 평가다. 백용호 교수를 중심으로 강명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현 서울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이 시장의 자문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또 서울시 산하 75개 위원회 380명의 자문교수를 직접 위촉, 이들도 이 시장의 잠재적인 우군으로 분류된다.

# ‘신뢰’와 ‘인연’의 이명박믿는 도끼에 발등도 잘 찍혀

92년 현대를 떠나 정치권에 입문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정치인’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연소 CEO, 샐러리맨의 신화 등 기업인으로서 그가 누렸던 화려함이 빛을 발한 시기도 따지고 보면 그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다. 2번의 국회의원을 거쳤음에도, 그가 역경을 견뎌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선에 있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 시장이지만, 아쉽게도 핵심참모의 ‘배신’ 때문이었다. 96년 15대 총선 때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이종찬 후보를 꺾고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선거비용 초과지출, 비서관 해외도피 혐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유다. 그리고 핵심참모의 배신은 대권고지에 오른 이 시장의 발목을 또 한 번 잡는 듯 했다.

바로 청계천 완공을 몇 달 앞두고 터진 ‘청계천 비리건’. 이 시장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서울대 교수이자 건축·조경 전문가였던 그는 2002년 시장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 자연스럽게 이명박 캠프에 합류했으며, 그 해 8월 청계천 복원을 총괄하는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에 임명됐다. 양 전 부시장을 전적으로 믿었던 이 시장은 지난해 7월, 서울시 기술직 업무 총괄직인 행정2부시장에 기용했다. 그에 대한 인선을 두고 서울시 공무원 노조 및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어 왔음에도 이 시장은 양 전 시장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 시장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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