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돼지? 나쁘진 않은데 더 좋은 별명은 없을까요.”지난달 30일 제주 나인브릿지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으로 신데렐라가 된 이지영(20·하이마트)의 자기 별명에 대한 반응이다.돼지라는 표현이 다소 못마땅한 표정이다. “평소 잘 웃는 얼굴인 만큼 웃음과 관련된 멋진 별명을 붙여주면 좋겠는데…”라며 예쁜 미소작전으로 은근히 유혹한다.이지영의 ‘꽃돼지’란 별명은 지난 6월에 생겼다. 이지영이 내셔널타이틀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후원사인 하이마트 임원과 선수단의 회식자리에서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이 붙여줬다. 당시 선 사장이 “우승도 해 유명해졌는데 별명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라고 말문을 열자 주위에서 “스마일퀸 어때요?”라고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선 사장이 “너무 평범한 ‘스마일퀸’보다는 ‘꽃돼지’가 제격이다”며 붙여줬다. ‘꽃돼지’가 또 사고(?)를 쳤다. 한국여자오픈 우승에 이어 이번에는 대형사고다. LPGA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 최종합계 5언더파 211타를 기록, 공동 2위인 김미현·카린 코크(스웨덴)를 3타차로 따돌리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한 것. 올시즌 무려 8승을 올린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도, 디펜딩챔피언 박지은도 ‘루키’ 이지영의 발밑에 있었다.프로데뷔 첫해에 LPGA투어 대회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2003년 안시현에 이어 신데렐라가 된 이지영은 부와 명예를 한번에 거머쥐었다. 우승상금 20만2,500달러(약 2억1,100만원)에다 후원사인 하이마트로부터 1억원 이상의 포상금을 받는다. 또 작년 12월 하이마트와 계약한 이지영은 다음달 재계약이 확실시되는데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전망이어서 돈방석에 앉게 됐다. 이쯤되면 ‘꽃돼지’가 아니라 ‘복돼지’가 되는 셈이다.

사실 이지영은 집안의 ‘복돼지’로 통한다. 이지영은 자신도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출생과 관련된 비밀이 있다. 이지영은 1985년 12월2일생이다. 당시 언니(이주연·21)는 이제 갓 돌을 지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젖꼭지를 물고 있는 아기가 있는 가운데 이지영이 태어난 것이다. 이른바 언니와는 연년생. 이지영의 부모님은 “지영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다. 갓난아기가 있는데 계획에도 없는 임신이었기 때문”이라면서 “한때 낙태를 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혹시 아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산을 했다”고 했다. 이지영의 부친 이사원(51)씨가 집안의 종손인 관계로 아들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지영을 낳고 실망감도 컸다고 한다. 그러나 이사원씨는 “글쎄, 괄시받고 나온 놈이 이렇게 복덩어리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라면서도 “지영이가 이 같은 출생 비밀을 알면 안되는데”라며 걱정했다.

이지영과 언니 이주연 사이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지영이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한 반면 언니는 유치원 때부터 무용을 시작, 현재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현대무용을 하고 있다. 하는 일의 특성상 지영이는 많이 먹어야 하는 반면 언니는 다이어트를 해야하는 극과극의 운명이다. 집안 식구들이 외식을 나가면 지영이는 포식을 하지만 언니는 침만 삼켜야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지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회전에 아침식사는 꼭 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이지영의 부모님은 “항상 지영이에게만 온통 신경을 쓰다보니 주연이에게는 미안할 때가 많았다”면서 “그래도 주연이가 언니로서 모든 걸 이해해 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공교롭게도 이지영은 다이어트를 위해 골프를 했다.

이지영은 7살 때부터 부천 부곡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수영을 했었다. 그러나 어깨가 넓어지는 것 같아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가서 골프채를 잡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골프전문고등학교인 낙생고에 진학해 실력이 일취월장한 이지영은 2003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KLPGA 2부투어에 진출했고, 2부투어에서 우승없이 상금 14위로 정회원 자격을 취득한 뒤 11월 승주골프장에서 열린 2005KLPGA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지영은 올시즌 첫 대회이자 프로 데뷔전이었던 삼성레이디스마스터스(2월·싱가포르)에서는 컷탈락되면서 혹독한 프로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이지영은 지난 5월 올시즌 국내에서 열리는 첫 대회이자 내셔널타이틀인 한국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SK인비테이셔널과 메리츠금융클래식에서 각각 공동 10위, 11위에 오르는 등 정상권을 넘보던 이지영이 CJ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으로 톱스타로 부상했다. 이지영은 키 170㎝, 몸무게 75㎏에서 뿜어내는 비거리 270~280야드의 드라이버샷이 일품이다. 샷 비거리에서는 국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셈이다. 이지영의 골프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사원씨는 골프구력 15년에 잘나갈 때는 언더파를 기록하는 등 프로뺨치는 수준. 비거리도 아마추어치고는 장타인 260야드 정도를 날린다. 이지영이 중고등학교 때까지 만해도 아버지와 스크래치로 맞붙었지만 지금은 게임이 안된다. 이씨는 “요즘은 실력차이도 차이지만 지영이 뒷바라지하느라 골프채를 통 잡지 못한다. 지금은 약 80타대 중반 정도 치는 수준이다”라고 했다.

부녀간에 웃지 못할 골프 에피소드도 있다. 지난 6월 열린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골프대회 1라운드에서 캐디를 맡은 아버지의 깜빡 실수로 2벌타를 받는 황당한 사고가 터진 것. 이지영은 레이크사이드골프장 5번홀(파4)에서 티샷을 그린에 올렸으나 아버지가 퍼팅 라인에 손을 대자 이를 본 동반 플레이어의 캐디가 ‘2벌타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경기위원들은 ‘그린 위 손상을 수리할 때 등을 제외하고 퍼트선에 접촉하면 안된다’는 골프규칙 16조1항의 규정을 적용, 2벌타를 부과했다. 이지영은 2벌타를 받아 그 홀 스코어가 더블보기가 됐다. 결국 그 대회에서 공동 4위를 할 성적이 공동 11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이지영은 “아빠, 괜찮아요”라며 오히려 격려한 뒤 8번, 9번홀에서 연속버디를 잡아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덜어준 효녀골퍼다.이지영의 낙천적인 성격도 큰 장점이다.

이지영은 잘 웃고, 성격이 유순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골프를 즐기는 편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성적을 쫓는 골프를 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승부욕을 비롯한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특유의 낙천적인 성향과 즐기며 골프를 해온 이력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이 오히려 좋은 성적을 낳는 요인일지 모른다.많은 선수들이 ‘지옥훈련’을 한다면 이지영은 ‘자율훈련’에 길들여져 있다. 이지영은 두달전 평양골프대회에 다녀온 뒤 감기에 걸렸고, 감기가 오래되다보니 천식으로 이어져 요즘 기침을 달고 산다. 또 CJ나인브릿지대회 출전 전부터 스윙 교정 여파로 팔과 허리 등에 통증이 있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대회가 끝난 뒤 병원을 찾아 피뽑고, 부황을 떠 현재 온몸이 피멍으로 물들어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4일부터 열린 국내 마지막 대회인 ADT CAPS챔피언십 출전을 강행했던 이지영은 1라운드에서 5번홀까지 마친 뒤 오른쪽 손목 통증이 심해져 중도에 경기를 포기했다.이지영은 CJ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으로 미국LPGA투어 진출 티켓도 획득, 내년부터 LPGA투어에서 활동하게 됐다. 내년도 LPGA투어 조건부 시드 1순위와 2007년 전경기 출전권을 따낸 이지영은 이에 앞서 11월10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열리는 LPGA투어 토너먼트오브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7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끝나면 잠시 귀국했다가 또 다시 미국 플로리다주로 동계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이지영은 “미국에 가서도 잘 해야겠지만 우선은 배운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하겠다. 동료와 언니들이 많이 있어 큰 힘이 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이지영은 우승 당시 “(김)미현 언니가 축하해, 앞으로 미국에서 네 얼굴 징하게 보겠네”라고 했단다.이지영은 올 시즌 초 약 3개월 동안 국내 대회가 열리지 않았을 때부터 원어민 개인 교사를 통해 영어를 배워 왔다.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하지만 대부분 알아듣기는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갤러리가 많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드라이버가 장기인 만큼 정교함을 더 살려내야 한다”고 자신을 진단한 이지영이 LPGA투어에서 어떤 활약을 펼쳐보일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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