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스몰딜→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 시나리오 현실화 우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례 없는 동맹문법에 동맹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안보청구서를 들이미는 등 미국우선주의식 동맹문법에 당장 대북억지력의 굳건한 바탕이 됐던 한미동맹의 입지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트럼프, 동맹아닌 돈을 쓰는 국가취급···중재자 나섰던 한국만 외톨이

트럼프식 동맹문법은 동맹을 거래 상대방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국제사회에서 큰 논란이 돼 왔다.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 동맹국 비난 세례가 일례로 꼽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우리는 생명과 자산을 걸고 3차 세계대전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격을 받으면 일본은 전혀 도울 필요가 없다면서 일본은 소니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 된다고 발언했다. 독일을 향해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거론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고 비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워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았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그가 내민 비용청구서 역시 미국 납세자들의 돈을 다른 나라를 위해 쓰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트럼프, 보다 챙긴다?

한국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동맹문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북한 문제와 맞물려 훨씬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 수신 사실을 공개하며 김 위원장은 실험, 전쟁놀이(the war games)에 행복해 하지 않는다면서 알다시피 나도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에 돈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불만을 표한 전쟁놀이는 한미 연합훈련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의 아시아 핵심 동맹국이다. 반면 북한은 미국 내에서 한때 선제타격론까지 논의됐던 엄연한 적성국이다. 28500여 명의 주한미군은 대북억지력을 담보한다. 아직도 한반도 유사시 전시작전통제권은 사실상 미국에 있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을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불만에 동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버지니아 햄프턴에서 진행된 재선캠페인 모금행사에서는 브루클린에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발언했다. 또 한국, 일본식 영어발음을 흉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도를 넘는 동맹 조롱이라는 비판이 즉각 잇따랐다. 동맹국인 한국을 일개 임대아파트 취급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별개 노선 수립 어려워

적극 위기 돌파 절실

동맹국으로서 대북정책에 긴밀히 공조해야 할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그저 돈을 쓰는 대상으로 취급하며 오히려 함께 대응해야 할 상대방인 북한 지도자에게 애정을 표한 상황은 한국 입장에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북미가 직접 대화에 나서고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라 충격은 더욱 크다.

아울러 해당 발언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연이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도발에 대해 싱가포르 합의 위반이 아니다”, “우리는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면서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미국 본토에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동맹국인 한국을 사정권으로 한 도발은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경시와 북한 리스크까지 맞물리면서, 대북 저지력을 담보하는 주한미군 거취와 연계해 보다 심각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북미 스몰딜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분석가인 벤저민 R. 영 다코타대 조교수는 니케이아시안리뷰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상대로 한 방위비 인상 압박을 거론하며 미국은 이를 주한미군 제한, 종국적으로는 철수 지렛대로 삼길 원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개인 사업이 아닌 국가안보, 외교의 영역에서 동맹국들을 향해 무작정 비용청구서를 들이미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이미 국제적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식 동맹문법이 결국 미국의 고립을 자초,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미국의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중재를 자처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대신 이란과의 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독일은 이란 발 중동 위협에 맞서 미국이 제안한 호르무즈해협 호위연합체 구성에 퇴짜를 놨다. 일본 역시 연합체 참여 대신 자위대 독자 파병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은 애매한 상황이다. 북핵문제라는 상시적 안보위협을 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처럼 별개의 노선을 수립하거나,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문법이 변화하기만을 기다리며 안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또 앉아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기만 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없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반복되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과 일본의 경제보복 등으로 다방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동북아 세력균형의 한 축이자 오랜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경시할 수 없다.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위기 돌파와 해법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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