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국회’ 넘어 ‘무생물국회’된다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9월 정기 국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기간에는 국회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정감사도 진행된다.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앞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9월 정기 국회 파행이 예상된다. 또한 추석과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이 지역구 행보를 늘리고 있어 마지막 정기국회가 ‘들러리’로 전락할 위기다. 이번 20대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처리도 역대 2번째로 늦장 통과되는 등 ‘식물국회’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남아있는 의안들은 자동 폐기돼 최다 임기만료 폐기로 ‘2관왕’을 달성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텅 빈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텅 빈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역대 두 번째 ‘늦장 추경’... 최다 ‘임기만료’ 폐기로 불명예 ‘2관왕’ 달성하나

국회는 매번 열리는 게 아니다. 국회법 제4조(정기회)에 따르면 정기회는 매년 9월 1일에 집회된다. 만약 그 날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에 집회한다. 오는 9월 1일은 일요일이기 때문에 정기 국회는 다음 날인 9월 2일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회기는 100일 이내로 이 기간에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국정 전반에 대한 감사인 국정감사를 진행한다. 또한 예산안과 결산에 대해 소관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심사 등이 이뤄진다.

임시회의 경우 국회법 제5조의2에 2월·4월 및 6월 1일과 8월 16일에 임시회를 집회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4분의 1 이상이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을 때 열리며 회기는 30일 이내다.

조국 청문회로 정기국회마저 파행되나

하지만 정기 국회 회기와 맞물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예고돼있어 일각에서는 1년에 한 번뿐인 정기 국회가 ‘들러리’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농림축산식품부·여성가족부 등 10개의 장관급 직위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이 중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조 후보자의 청문회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칼날 검증을 예고하고 있고 범여권으로 불리는 정의당까지 조 후보자의 청문회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주요 쟁점은 민정수석 재직 당시 인사 검증 실패,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관련 사건, 폴리페서 논란 등이다. 여기에 자녀 특혜 논란이 퍼지면서 야당은 조 후보자의 사퇴까지 촉구하고 있다.

여야는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로 넘어왔지만 청문회 일정 합의에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와 다가오는 추석 전 조 후보자의 임명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국당은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을 들며 9월까지 ‘조국 이슈’를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의 청문회가 9월로 넘어간다면 9월 정기국회까지 영향을 주게 돼 ‘국회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20대 국회는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지속하며 ‘식물국회’라는 지적을 들었다. 게다가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7년 만에 몸싸움을 벌이며 ‘동물국회’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패스트트랙이 통과된 이후 한국당은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민주당은 협상에 나서지 않아 국회 마비가 초래됐다. 한국당은 지난 24일 광화문광장에서 4개월여 만에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장외집회가 계속된다면 국회마비 또한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4월 상임위의 법안심사를 정례화 시킨 ‘일하는 국회법’이 본회의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됐지만 강제성이 없어 의원들은 본인이 통과시킨 법안을 어기고 있다.

조 후보자의 청문회와 더불어 추석과 총선 6개월여를 앞두고 의원들은 민심 대목 잡기에 나섰다. 일요서울이 복수의 의원실에 인터뷰를 요청한 결과 대부분의 의원들이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지역구 일정을 잡고 있었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방문해 지역민들의 민원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회 파행이 예상되는 이때 ‘금배지’ 사수를 위해 지역구에만 귀 기울인다면 선수는 이어가더라도 의정활동에서는 낙제점을 받을 수 있다.

쌓여가는 의안에 처리는 ‘깜깜 무소식’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월 22일 기준 20대 국회에서는 총 2만2249건의 의안이 발의됐지만 2787건 가결되고 5건 부결이 부결됐다. 이전 국회와 비교했을 때 19대 국회에서는 1만8926건 발의되고 3417건 가결됐으며 7건 부결 됐으며 1만49건이 임기만료 폐기 처리됐다. 18대국회에서는 1만4947건 발의 중 2934건 가결·8건 부결 처리되고 6489건이 임기만료 폐기 처리됐다.

20대 국회와 이전 19대·18대 국회를 비교했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국회가 훨씬 더 많은 의안을 발의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가결된 법안 수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가결된 법안이 많다고 해서 활발한 의정활동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부결 의안 개수에서도 차이가 나 실질적으로 본회의에 오른 법안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나타낸다.

20대 국회가 끝나면 처리되지 못한 의안들은 자동 임기만료 폐기 처리된다. 아직 다음 총선까지 시간이 남았다고 하지만 상임위원회와 법안소위원회에 계류돼있는 법안이 산적해 있다. 게다가 의원들이 총선에 맞춰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구와 관련된 선심성 의안을 계속 발의한다면 폐기되는 의안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국회는 이미 추가경정예산안(추경)으로 불명예를 기록한 바 있다. 국회는 지난 2일 본회의를 개최해 5조8269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추경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국회 제출 99일 만으로 역대 최장기록(김대중 정부 시절 107일)에 이어 두 번째로 늦장 처리됐다.

이번 추경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강원도 산불피해 대책·포항 지진피해 대책·붉은 수돗물 피해 대책 등 민생예산이 포함돼 있어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정쟁만 계속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게다가 법안 등 안건 처리를 위해 본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 4월 5일 이후 119일 만이다.

일부 민생법안들은 추경과 함께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국민들의 요구가 큰 법안임에도 아직까지 해당 상임위나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는 법안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강원도 산불 당시 소방관들의 노력으로 더 큰 피해를 막자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대한 국민여론이 타오르며 찬성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6년 발의한 소방관 국가직 전환 법안은 지난 6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를 겨우 통과했지만 아직까지 안건조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정기국회가 파행을 겪더라도 국정감사에는 의원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전망이다. 국감이 끝나면 이른바 ‘국감 스타’ 의원이 나올 정도로 각종 소품·의상·자료를 활용해 관련 부처 상대로 질의한다. 다만 국감이 끝나고 여야가 총선 모드에 돌입한다면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쌓여 있는 법안들이 자동 임기만료 폐기돼 20대 국회가 역대 두 번째 늦장 추경 처리에 이어 최다 임기만료 폐기로 ‘2관왕’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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