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덕 수석연구위원
박상덕 수석연구위원

1968년 9월, 구로공단에서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박람회의 일환으로 미국 원자력위원회에서는 공기를 주입하여 특이한 건물을 만들어 원자력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하여 홍보를 했다. 서울 시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별도 초청하여 원자력의 원리와 미래에 대하여 설명했다. 정부는 이때 이미 고리1호기를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부지 및 노형을 결정하던 시기였다. 발전소 건설인력이나 운영인력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미국 원자력위원회에 도움을 청해 원자력을 홍보했다고 추측된다. 이 설명회를 통하여 원자력 불모지 대한민국에 희망의 에너지가 홍보되었다는 것은 국민에게도 국가에게도 큰 행운이었다.

원자력과는 50년대 말 처음 만들어진 시기를 제외하고는 원자력과의 커트라인이 공과대학에서 하위 그룹에 있었다. 원자력을 공부해도 연구소 이외에는 특별한 취직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리1호기 건설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1970년부터 갑자기 원자력과가 상위 그룹으로 올라갔다. 서울공대에서는 3위에 랭크되었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 우대 정책으로 공과대학에 인재가 몰리던 시절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상위 3개학과에 들어갔으니 국내 이과계의 인재가 모였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그 인력들이 원전 건설과 운영, 연구개발과 기술 자립의 주역이 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실 원자력 인력양성과 관련해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하여 이루어진 인력양성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일찍이 국가의 기반은 에너지, 식량, 물이고 그중에서 가장 부족한 에너지를 자립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원자력발전을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외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외국으로 원자력장학생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결단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에너지와 관련한 유명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625 휴전을 앞두던 때 이승만 대통령은 전기와 물을 확보할 수 있는 동북부 수력 댐을 필사적으로 수복하라고 지시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 3만 명을 무찌르면서 파로호를 우리가 차지했다. 사실 파로호의 이름도 오랑캐를 무찌른 것을 기념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지은 이름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고리1호기는 월성1호기와 함께 원전 건설과 운영에 우리 기술진이 처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서 훈련 받은 사람들이 후속 호기의 관리자로 자라서 원전 건설과 운영의 기술자립을 이끌었다. 고리1호기 초기에는 웨스팅하우스 엔지니어가 분야별로 상주하면서 운전을 도왔고 우리 손으로 운전하기에 충분한 기술을 습득했다고 여겨지던 때 웨스팅하우스 엔지니어들이 떠났다. 그 결과 주로 미국기술이 접목되었지만 일본의 유사한 발전소 운영도 벤치마킹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고리1호기에 보안규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일본 방식을 채택한 것이었다.

고리1호기는 운영허가 기간을 10년 더 연장하여 운전하는 기록도 세웠지만 세계적인 60년 운전 추세를 따르지 못하고 40년 만에 퇴역하였다. 더구나 퇴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국가를 선언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니 40년 고리1호기의 운영에 몸 바쳐 온 기술자들에게는 정말 어이없는 치욕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에는 80년까지 운전하려는 경향이 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도 계속운전이 가능하도록 기술적, 인허가적 준비를 하도록 원전 운영국에 권고하는 상황이다.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인데 우리 정부는 세계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하여튼 고리1호기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원전 해체 준비팀이 발족하여 기술적, 법적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원자력만큼 확실히 승리한 분야가 몇 안 된다. 우리보다 앞서가던 일본을 누르고 우리가 먼저 해외 수출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없는 분야의 경쟁력을 기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경쟁력이 있는 원자력 분야를 지렛대로 이용하여야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지도자의 판단이 중요한 시기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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