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무장관 후보자 덕분에 다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의 줄임말로 상대방이 할 때는 비난하던 짓을 자신이 할 때는 옹호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지금은 정계에서 물러 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하는데, 한국 현대 정치에서 펼쳐지는 적반하장, 아전인수 행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정치 용어로 굳어지고 있다.

‘내로남불’은 여야 구분도 없고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THAAD)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뒤에 벌어진 일은 애국과 매국의 경계를 허무는 내로남불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했던 당시 야권은 시간이 흘러 집권여당이 되었지만 사드 철수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지금은 야당이 된 당시 여당 의원들 중에는 사드 배치 후보지로 자신의 지역구가 거론되는 것에는 반대하는 행태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이런 식의‘내로남불’이 성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 정치가 사회세력 간 이해관계의 절충장이기보다 아군과 적군만 존재하는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는 총성이 멈추는 비무장지대도 없고 절충과 타협을 가능하게 할 회색지대도 없다. 잘못을 해도 우리는 착한 편이고, 상대방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근본이 악한 존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진영논리가 ‘내로남불’을 만든다.

조국 후보자는 딸 문제로 인사청문회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현 여권 지지자들에게는 조 후보자의 딸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이들은 보수야당과 언론이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인 조 후보자를 마녀사냥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논문 1저자가 되고,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유급을 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인다. 조국은 우리 편이기 때문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 후보자에 앞서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장관과 총리를 지냈다. 현 여권 지지자들은 황 대표가 인사청문회를 받을 당시에는 조 후보자에게보다 더 엄격한 태도를 보여줬다. 황 대표의 수임료 과다, 병역면제 의혹, 불법증여와 탈세 의혹, 과태료 체납, 아파트 투기 등의 의혹을 문제 삼으면서 ‘자격 없음’을 주장했다. 모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사실이 되고 결격사유가 되었다. 황 대표는 우리 편이 아니니까.

사실 조 후보자가 아니라도 한국사회에서 자녀 교육 문제는 모두가 공범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장이나 살아 온 삶의 고결함과 상관없이 자녀 교육 문제에서만은 자신의 평소 주장과 상반되는 행태를 보인 사례가 많다. 지금 조 후보자를 공격하는 야당 의원들 중에서도 조 후보자의 딸 못지않은 특혜를 누리고 있을 가능성은 부인하지 못한다. 조 후보자를 비난하는 누구라도 기회가 된다면 자기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킬 의사를 가지고 있다.

조 후보자더러 ‘법무장관이 아니라 무법장관’이라고 하는 황 대표조차도 자식들이 입시에 도움이 되는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일반 서민의 자식들에게는 장관상을 받는 것도 논문 제1저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불법적이지는 않지만, 부모 덕에 만들어진 이런 스펙들을 가지고 조국의 자식이나 황교안의 자식은 좋은 대학을 간다. 자기들끼리는 ‘내로남불, 내로남불’하면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조 후보자가 법무부장관이 되고 말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로남불’ 하는 이들과 ‘내로남불’ 할 수 없는 일반 서민들 사이에 그어진 격차를 목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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