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문제 유출해 최상위권 학생들 내신 관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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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에 대한 ‘특혜’ 의혹이 연일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다. 조 후보자의 딸이 낙제·유급에도 장학금을 수령했다는 점과 고등학교 2학년 때 참여한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됐다는 점 등이 가장 큰 쟁점이다. ‘입시 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교육열이 뜨거운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학과 관련된 부정은 사회적 지탄을 피할 수 없다. 조 후보자의 논란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입시’가 엮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입시와 관련된 부정·의혹이 비단 조 후보자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에 뿌리 깊이 박힌 ‘썩은 살’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광주의 한 사립 명문 고등학교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에 시험 문제를 유출해 조직적으로 내신 관리를 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이 학교는 매년 10명 안팎을 서울대에 진학시킬 만큼 뛰어난 입시 실적을 자랑해왔다. 수도권 대학 진학자 수도 매년 100여 명에 이른다.

성적 우수자에 ‘특혜’ 의혹도…

근조 내건 학교 “일부 교사의 실수를 고의 몰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불거졌다. 3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뒤 한 학생이 사회적 관계서비스망(SNS)에 “같은 반 학생이 실제 출제된 문제와 똑같은 문제가 담긴 유인물을 보여줘 모든 학생이 충격을 받았다”고 알린 것이다.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을 제기한 학생의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올라갔다. 학교는 긴급회의를 소집한 뒤 지난달 9일 수학 시험 문제 5문항을 다시 출제해 재시험을 치렀다.

유출 의혹이 제기된 문제는 객관식 3문항과 서술형 2문항 등 5문항으로 총 26점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학교 수학교사 A씨는 이 문제를 5월 중순과 하순 2차례에 걸쳐 90문항 짜리 유인물 3장에 담아 수학동아리 학생 31명에게 풀어보도록 했다. 실제 시험에서는 이 문한 중 한 문항이 주관식에서 객관식으로 바뀌었을 뿐 문제와 조건, 숫자까지 같게 출제됐다. 문제를 미리 받은 수학동아리 학생 31명 중 30명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성적우수자들로 알려졌다.

“1, 2등급도 풀기 힘든 최상위권 문제”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학교 측은 시험 문제 유출 의혹에 대해 “문제를 변형해 출제했다”고 해명했지만 교육청 감사 결과 똑같은 문제가 출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0일 광주시 교육청은 “지난 5일 치른 B고교 3학년 기말고사 수학과목 21문제 가운데 5문제가 수학동아리 학생에게 나눠준 유인물 ‘수학문제풀이’에서 출제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 5개 문항은 1, 2등급도 풀기 힘든 문제”라면서 “동아리 학생을 제외하면 대부분 백지 답안지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광주시 교육청은 직원 20명으로 구성된 감사반을 투입, 해당 학교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했다.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역시 국민권익위원회에 “특정 학생을 위해 시험문제 출제 권한을 남용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신고했다. 반면 당시 학교 측은 “문제를 미리 받아본 학생이 모두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아니고, 풀어본 학생 상당수도 틀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유출 의혹을 부정하면서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부분은 잘못된 일로, 고치겠다”고 해명했다.

꼬리를 문 의혹…결국 사실로

학교의 해명과는 다르게 일부 학생은 이후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영어·수학 등 과목에 대한 수준별 이동 수업과 성적 우수자 중심 자율동아리 운영 등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시험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 사용한 교재에서 시험 문제가 출제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학교 측은 수준별 이동 수업 등 심화반 운영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부작용을 고려,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생활기록부와 교내 수상 등에서는 심화반 학생들의 진학 욕심과 학습 역량이 높아 결과적인 차이가 발생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약 한 달간의 조사 끝에 해당 학교는 시험 문제를 사전 유출하는 방식으로 최상위권 학생들을 조직적으로 특별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3일 광주시 교육청은 “B고교가 명문대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 부당한 교육 과정을 운영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해당 학교 교장과 교감에 대해서는 각각 파면과 해임, 부장교사 4명에 대해서는 중징계를 내릴 것을 학교법인에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광주시 교육청이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B고교는 전체 시험 문제 중 70% 이상을 문제집이나 기출 문제에서 출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부터 2019학년도까지 해당 학교 수학 시험에 출제된 고난도 객관식·서술형 문항 197개 중 150개가 문제집 혹은 기출문제와 일치했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문제가 특정 학생에게만 제공됐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광주시 교육청은 “지난달 수학 시험에 출제된 5문항과 관련해서는 광주지검에 고발 조치를 했다”며 “수학 최고급반 교재에서 평가 문항이 출제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B고교는 또 전 학년 모두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편성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배려 없이 성적 우수자를 대상으로만 기숙사 학생을 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교육 활동은 기숙사 학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방과 후 학교나 자율학습 동아리 활동, 토요논술 등 심화 교육활동을 제공하며 일반 학생들과 차별을 두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시 교육청은 B고교를 중점관리 대상학교로 지정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할 예정이다. 광주시 교육청 관계자는 “조직적으로 학교를 입시학원화 했다”면서 “학생들이 차별과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교육과정 재 점검과 현장상담, 시험관리 등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학교 “특혜 아니다”

학교 측은 교육청의 감사 결과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 학교는 지난 20일 정문과 체육관 등에 15개의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에는 ‘성적조작·비리 사실이면 폐교하겠습니다’, ‘광주교육 사망, 삼가 명복을 빕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B고교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일부 교사들이 실수한 것을 고의로 했다고 몰아가고 있다”며 “시교육청 감사 결과에 대한 학교 측 입장문을 내고 상황을 설명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고교가 ‘폐교’까지 거론하며 교육청 감사 결과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만큼,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은 재판정에 가서야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입시 현실이 씁쓸하다”는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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