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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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국내 5대그룹 총수들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기업들은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주요소재 및 부품에 대해 탈일본화에 나서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총수들은 일본의 경제보복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산화 전략에 힘을 싣고, 근본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총수들의 이러한 대응은 일본의 잦은 변덕을 계기로 앞으로 반복될지 모르는 위험까지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일본 직접 찾아가는 총수들… 급박한 사안 보여줘 
탈일본화에 나서는 기업들 … 국산화 전략에 힘 쏟고 있어


정부가 지난 12일 전략물자 수출지역 구분을 변경해 일본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한·일 경제전쟁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악화된 한일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데다가, 경제 협력의 신뢰가 크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기업들도 예전처럼 원활한 일본산 소재 및 부품 조달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 정부도 탈일본전략을 부추기고 있는 분위기다. 탈일본전략을 추진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완화와 세제감면, 연구개발비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직접 일본 출장길 올라

이러한 국내 분위기에 따라 기업 총수들도 자발적인 탈 일본 행보에 나섰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일본으로 건너가 엿새간 현지 상황을 살피고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경영진들과 비상회의를 수 차례 열고 대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에 일본산 소재 및 부품에 대한 재고를 90일치 이상 확보해 달라고 요청해 단기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지난 6일에는 충남 온양사업장과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부문 최고경영진들과 함께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경기 평택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과 기흥 시스템LSI 등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일 전자계열사 사장단을 긴급 소진해 수출 규제 문제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벨기에 기업으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조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수석부회장도 일본행에 동참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말 일본 출장에서 양궁협회 관련 일정을 마친 후 현지 부품 수급 동향에 대한 보고를 받고 현지 상황을 점검했다. 여름휴가 기간에도 국내에 머물며 현안을 챙기고 경영진들로부터 일본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한 보고를 수시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는 부품의 국산화가 90%에 달해 일본의 경제보복 영향에 큰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이미 차량용 부품산업의 일본 의존도를 낮춘 바 있기 때문이다. 

비상회의 소집 등 대응 전략 구축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비상회의를 통한 대응 시뮬레이션에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은 16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를 소집해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수펙스추구협의회 비상회의를 주재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매월 넷째 주 화요일에 정례회의를 여는데 현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판단해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해당 회의를 통해 예상 시나리오별 대책과 대응준비 등의 점검에 나섰으며 경영진들에 “그동안 위기 때마다 하나가 돼 기회로 바꿔온 DNA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극복 할 수 있다”며 기운을 북돋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지난달 11일 경기 평택 소재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을 방문해 경영진과 비상회의를 개최했고, 그룹 내 소재 확보 및 개발 등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구 회장은 최근에도 주요 사업장 방문을 통해 지속적인 점검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래 산업에 대한 구상에도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日 합작 브랜드 많아 ‘난감’

롯데그룹은 한·일 갈등에 가장 난감한 기업 중 한 곳이다. 유니클로, 무인양품, 롯데아사히주류 등 일본 기업과 합작한 브랜드가 많아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 하면 수출규제와 불매운동 등에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올해 하반기에 대한 VCM(Value Creation Meeting)을 주재했다. VCM은 각 사업군 현안 및 중장기 전략을 공유하고 시너지 창출을 모색하는 자리다. 식품·유통·화학·호텔 등 롯데그룹 내 4개 사업 부문별로 사장단 회의를 진행한 뒤 회의 마지막 날에는 사업군 별 논의된 내용을 그룹 전반에 공유했다.

신 회장도 지난달 6일부터 15일까지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매년 6월 말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이후 7월 초 일본 금융사 관계자를 만나 왔지만, 이번처럼 열흘 넘게 체류한 전례는 없다. 신 회장은 일본 출장 기간에 노무라증권, 미즈호은행, 스미토모 은행 등 롯데와 거래하는 주요 금융기관 관계자들과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현지 분위기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주요 경영진과 비상경영회의를 열고 위기 극복 방안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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