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수인가 신의 악수(惡手)인가, 한반도 격랑 속으로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논의 결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한일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일본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다. [뉴시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논의 결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정부가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했다. 미국은 물론 일부 정치권 등에서 지소미아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웠음에도 청와대가 종료 결정을 내린 것은 한일 갈등 국면이 악화일로를 달리는 상황에서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로 한반도가 격량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향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중재자 역할에 나설지도 주목 받고 있다. 

 

정면충돌 한일, 美 트럼프 ‘중재자’ 역할론 부상
문재인 정부 마지막 빅딜 카드 ‘도쿄 올림픽 보이콧’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정부는 지소미아를 종료한 배경으로 일본 정부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간 신뢰훼손으로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양국의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일본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 지난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도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압박 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호혜적 정보교환 끝
주로 北 핵·미사일 정보

 

2016년 11월 체결된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2급 이하 군사비밀 공유를 위해 지켜야 할 보안 원칙들을 담고 있다.

상대국에서 받은 군사비밀 등을 해당 국가에서도 비밀로 보호하겠다는 내용으로 지소미아에 따라 한국은 ‘군사 Ⅱ급 비밀’ ‘군사 Ⅲ급 비밀’로 비밀등급을 표시해 일본에 주고, 일본은 ‘극비·방위비밀, 비(秘)’로 분류된 정보를 한국에 제공한다.

한국보다 우수한 감시·탐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5기(예비 1기 포함)와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 이상의 지상 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80여대 등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한국은 군사분계선(MDL)에 근접해 감시정찰 자산을 활용한 대북 정보 수집이 가능하고, 고위 탈북자 등을 통해 확보한 인적 정보(휴민트)는 일본을 압도한다.

이 같은 한일 간 호혜적 정보교환이라는 측면에서 지소미아를 통해 대북 정보를 주고 받았지만 지난 2016년 지소미아 체결 이후 협정에 의해 양국 간 주고받은 군사정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상황에 국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 11월 지소미아 체결 이후 그해 1건을 시작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됐던 2017년 19건의 정보를 교환했지만 작년에는 남북 대화국면 속에 2건에 그쳤다. 올해 들어서도 5월 이전에는 단 한 건도 없다가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 5월 이후 정보 교환이 재개돼 지난 16일까지 7건을 주고 받았다.

지소미아가 종료된다고 해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와해되거나 당장 일본과의 정보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다고도 볼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지소미아 체결 이전에도 2014년 12월 29일 맺은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을 활용해 간접적인 군사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했다.

 

유감스럽다는 아베 총리
“약속을 먼저 지켜주길”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고 파기한데 대해 즉각 항의했다.

지지통신과 NHK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2일 공식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내심 지소미아의 연장을 기대한 일본 정부는 청와대가 불연장을 발표하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유감스럽지만 한국 측 대응이 어떻든 일본으로선 태평양 전쟁(2차대전) 중에 이뤄진 징용(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대처자세는 바꿀 수 없다”며 “방위 측면에선 미일 연대도 있어 바로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향후 방위 당국 간 의사소통이 한층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23일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들에게 “미국과 제대로 협력해 지역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겠다”며 “일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나라와 나라의 신뢰 관계를 손상시키는 대응이 유감스럽지만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의 대응에 대해서도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을 하지 않는 등, 나라와 나라 간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약속을 먼저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시스]
[뉴시스]

일본에 대한 전면전 선포
28일이 한일 갈등 분수령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전격 종료 결정을 내리고 일본 정부가 적극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강대강 대치국면을 이어온 한일 경색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전망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일 외교당국 간 대화 채널은 유지되겠지만 양국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면서 “일본에 대한 전면전 선포의 의미가 있어 향후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지소미아 연장 여부는 한일 관계에 놓인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라며 “이번 종료 결정으로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제안했던 강제징용 해법 등 모든 부분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28일 발효될 예정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한일 갈등 확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 교수는 “일본 정부가 28일 화이트리스트 관련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지소미아 종료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입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이어 일본이 28일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본격 시행하면 한일관계는 시계 제로 상태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 중요 시점으로 아베 정부 개각, 일왕 즉위식 등을 꼽고 대일 특사 파견 등을 검토해왔지만 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28일부터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뒤 추가로 꺼낼 카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또 어떤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주목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밀 수 있는 마지막 빅딜 카드로 도쿄 올림픽 보이콧이 거론되고 있으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이언주 의원
“국가전복세력” 강력 비판

 

당분간 정치권도 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 범여권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일제히 환영한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국익을 외면한 결정으로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자유한국당 김현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말 막나가는 정권이다. 국가의 이익을 버리고 정권의 이익을 선택했다. 안보마저 실익이 아니라 이념으로 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만들었다”라며 “조국 후보자 때문에 문재인 정권에 실망하던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문재인 정권에 이 나라를 계속 맡겨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언주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파기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런 국가안보 문제까지 썩은내가 진동하는 조국 건을 덮기 위한 술책으로 이용하는 부패한 정치인들이다”라고 비판에 나었다.

이 의원은 “지소미아는 한미일동맹을 연결하는 축이고 미국이 파기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라며 “북한이랑 힘 합해서 일본 물리치자더니, 결국은 평화협정, 미군철수, 한미동맹 파기, 연방제통일 수순으로 가겠다”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이것들은 진보도 아니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국가전복세력일 뿐이다”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뉴시스]
[뉴시스]

미국은 유지 원했는데
‘북한과 중국에 큰 선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나면서 한미동맹 균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공개하면서 미국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부터 한일관계를 넘어 한미관계, 한미일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역내 안보 전략은 3국 간 정보와 안보 협력에 기초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3각 공조 체제에서 사실상 탈퇴를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비어는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한 데 대해 워싱턴의 고위 당국자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북한과 중국에 큰 선물을 줬다고 의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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