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n 여행이야기] 베네치아에서 보낸 남다른 3일- 첫번 째 이야기
[Go-On 여행이야기] 베네치아에서 보낸 남다른 3일- 첫번 째 이야기
  • 프리랜서 함희선 기자
  • 입력 2019-08-23 20:13
  • 승인 2019.08.26 14:10
  • 호수 1321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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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nta di Piave Designer Outlet in Venezia]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이탈리아 북부 ‘물의 도시’의 낭만을 찾아 베네치아로 떠났다가 여행의 방향을 돌렸다. 섬에서 멀지 않은 맥아더글렌 디자인 아웃렛에서 실컷 지갑을 열고, 인파를 피해 존재감 없는 근교 소도시에서 하루를 보냈다. 샛길로 빠져서 만끽한 3일간의 짧은 베네치아 여행기.

Day 1. Venezia
마법에 홀린 듯한 물의 도시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인파와의 전쟁이다. 아름다움을 쫓는 건 여행자의 운명. 혼란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베네치아의 하이라이트를 목격한 후 도시의 진짜 매력을 탐미하기 위해 뒷골목을 거닐었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그래도 역시 베네치아다. 10년 전에 처음 마주했던 꿈 같았던 베네치아 대운하의 장관을 마주하고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아련하게 내뱉으면서. 눈앞에 환상처럼 너풀거리는 베네치아를 앞에 두고 속이 자꾸만 울렁거렸다. 마치 신도림역 환승과도 같은 인파를 겪어야 하는 리알토 다리 위에서의 찰나가 힘겨워서. 줄을 서듯 남의 뒤통수 틈으로 보이는 대운하를 겨우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는 말이 자꾸만 입술에서 맴돌았다. 관광객에게 점령당한 섬. 아무리 좋은 것만 보려고 해도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117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낭만적인 물의 도시’. 150개의 운하와 400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베네치아의 겉모습은 여전히 영화롭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도시는 잠시 스쳐가는 내게는 버거운 수준이었다. 외국의 어느 기사에서 접했던 내용 중 하나는 다소 충격적이다. 베네치아가 곧 ‘Open-Air Museum’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냥 루머가 아니고, 실제로 베네치아 정부는 입장료를 받고 방문객을 받을 계획을 세웠다. 이용자의 패턴에 따라 3~10유로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450유로의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것도 이미 공표했다.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려졌다시피 베네치아 현지인들은 급격하게 치솟은 물가와 집값, 떨어진 삶의 질에 고통 받은 지 오래다. 안쓰럽게도 치솟는 생활비와 불편해진 일상생활 탓에 대를 이어 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은 점점 섬 밖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돈에 눈먼 장사꾼들만 레스토랑과 상점을 꿰차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게 당연해지고 말았다. 이건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 예전부터 계속된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좋은 레스토랑이라도 동양인이 주문을 받거나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할 경우, 이런 조언을 듣기 일쑤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점포들마저도 문을 모두 닫아버린 시간, 텅 빈 리알토 다리 위에서 대운하를 고요하게 바라보는 거다. 곤돌라와 수상버스와 온갖 수송선이 뒤엉키는 교통체증의 광경 대신 거대한 물길 위에 배 몇 척 만이 떠다니는 고즈넉한 장면은 감동스럽다.

영화로웠던 그 시절

마치 박제된 도시를 다른 이의 발걸음에 휩쓸려 쓱 둘러보듯 하는 여행은 왠지 싫지만, 그래도 베네치아의 랜드마크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 며칠째 내리던 지루한 비가 그친 후의 베네치아는 여행자들로 혼이 빠질 정도였다. 산타루치아 중앙역에서 산 마르코 광장까지 걸어가는 3킬로 남짓한 길을 걷는 건 거의 단체 행군에 가까웠다. 그래도 어쩌나, 단 하루만 손에 쥔 여행자라면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므로 S자 모양의 대운하를 길잡이 삼아 해상을 호령했던 과거의 베네치아를 쫓았다.

하이라이트는 대운하의 출구 쪽 기슭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나폴레옹이 극찬했던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하면 화려한 비잔틴 건축 양식의 산 마르코 대성당이 반긴다. 바로 옆에 베네치아 총독의 거주지였던 두칼레 궁전이 흰색과 분홍색의 정교한 대리석 장식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바다에 면한 궁전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감옥과 연결되는 탄식의 다리가 나온다.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 유명한 감옥이다.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카페 플로리안은 성당이나 궁전 못지않게 인기다. 당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의 가능했던 곳이라 카사노바가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카사노바의 일화가 아니더라도 1720년에 문을 연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서 커피 한 잔 정도 마실 이유는 충분하다.

목적 없는 발걸음 

베네치아 여행의 주된 패턴은 당일치기다. 통계에 따르면 1년에 2천5백만 명의 방문객 중에 반이 넘는 1천4백만 명이 당일치기로 베네치아를 찾는단다. 일반적으로 3시간 정도 머무른다. 이는 점찍기에 불과하지, 도시를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섬을 빠져나갈 때는 길을 헤매는 편이 낫다. 막다른 골목에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지 않는 이상 위험한 일은 없으므로. 이정표나 지도에 의존하는 대신 방향 감각에만 의존한 채 걸어보는 거다. 나 역시 재빠르게 관광지를 섭렵하고 뒷골목으로 후다닥 뛰어 들었다.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소소한 일상을 구경하는 기쁨은 창밖에 걸린 말간 빨래부터 2층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누군가의 담배연기, 400개 중에 하나일 뿐인 이름 없는 운하와 다리, 수레를 끌며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부, 집 앞 골목에서 비둘기를 쫓는 어린아이, 자갈길 위에서 살랑살랑 움직이는 나무 그림자에 있다. 그러나 뒷골목일수록 현지인들의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곳. 민폐 끼치는 여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눈동자만 굴렸다. 남의 집을 들여다보거나 함부로 사진을 찍는 행동도 삼갔다. 베네치아가 변하고 있다고 투덜거리기 전에 예의부터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언젠가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처럼 입장하는 섬으로 끝내 전락하지 않기를, 현지인들의 삶과 행복이 지켜지기를, 눈에 보이는 베네치아의 영광이 변하지 않기를. “세상에 어떻게 이런 도시가 존재할 수 있지?” 또 다른 10년 후에도 베네치아를 바라보며 같은 말을 뱉으며 그 낭만에 취할 수 있기를 꿈꾼다.  

프리랜서 함희선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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