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관 시 ‘4년’ 의무 복무지만 ‘장기’ 선발 안 되면 전역해야

공군 학군부사관 임관식 [뉴시스]
공군 학군부사관 임관식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군의 ‘간부’는 장교와 부사관 두 갈래로 나뉜다. ‘준사관’이라는 특별한 계급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소위 이상의 장교와 하사부터 원사까지의 부사관이 간부를 대표한다. 이 중에서도 부사관은 부대의 허리나 마찬가지다. 일정 기간을 두고 부대를 옮기는 장교와는 달리 부사관의 경우 한 부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대 분위기나 특성을 꿰뚫고 있기도 하다. 또 자기 병과에서도 엄청난 전문성을 가지기 때문에 장기 근속 부사관은 실무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장기’ 복무를 했을 경우에 얻어지는 능력이다. 현재 부사관은 임관 후 4년간의 ‘의무 복무’를 거쳐 장기 복무 선발에 지원, 합격한 자만 평생 복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와 동시에 고용 보장 안 되는 상황”
“‘계약직 용병’으로는 국가안보 지킬 수 없어”

지난 20일 현역 부사관의 가족 A씨는 일요서울에 “대기 귀순과 노크 귀순의 반복을 불러오는 용병제 군 인사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부사관들이 명절이나 휴가에 대한 정당한 당직비용 없이 국가에 대한 헌신의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고 나라로부터 버려진다는 사실을 아시냐”고 제보했다. A씨는 “청춘 부사관들은 20대에 우선 단기선발 후 잘 근무하면 장기선발이 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았다”면서 “‘진짜사나이’ 등을 통해 부사관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높아져 우선 단기복무를 신청하게 되는 부사관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호소했다. 실제 A씨가 정보공개를 신청해 지난 7년간 해군과 공군의 부사관 채용인원 대비 장기선발인원을 비교한 결과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해군 남성 신규 부사관 채용대비 장기선발인원은 27.6%에 불과했다. 여성의 경우 신규 부사관 채용대비 장기선발인원 비율은 17.5% 수준에 머물렀다. 공군도 마찬가지였다. 동기 공군 남성 신규 부사관 채용대비 장기선발인원은 31.5%였다. 여성 신규 부사관 채용대비 장기선발인원 비율은 57.8%로 해군보다 3배 이상 높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장기 선발 비율이 낮은 게 현실이다. 육군은 2002년 50.7%에서 2007년 19.5%까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다 2008년 이후부터는 2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용이 안정돼야 군인으로서 자부심 지켜”

A씨는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세계 1위 공항인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6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파격 행보를 선보였다”며 “하지만 유일한 분단국가인 자국의 군인, 특히 사각지대에 놓인 부사관들의 복무 형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고 토로했다. 부사관의 복무 형태를 계약직으로 두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A씨는 “실질적인 안보 전략과 방안 수립은 윗선에서 할 것”이라면서도 “실제 상황에서 안보를 위해 싸우는 것은 사병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부사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사관이 계약직이고, 강제로 의무복무하는 상황이라면 ‘나라에서 고용한 용병’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토로했다. 약 50~80%의 부사관이 장기 선발을 받지 못한 채 계약직으로서 국가를 지킨다면 이들에게 국가 안보를 맡길 수 있느냐고도 덧붙였다.


A씨의 주장처럼 현재 부사관들의 고용은 ‘단기근무’ 형태로 하게 돼 있다. 군인사법 제6조는 부사관들은 장기선발이 아닌 단기근무를 조건으로 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장기선발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에 의거한 군인사법 시행령 제3조에서는 장기 선발을 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근무성적평정 열시 등이 없이 ‘정해진 전형을 거쳐야 한다’는 다소 불명확한 기준만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군인사규칙 제35조에서는 의무복무 기간을 설정해 이 기간에는 복무 의사가 사라지거나 이직 기회가 생겨도 전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특히 헌법 제15조에서 규정하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내용과 대치돼 많은 논란을 불러 왔다. 병사도 의무 복무 기간을 규정하고 있지만 부사관의 의무 복무 기간이 4년으로 병사보다 2배가량 길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군인의 꿈을 가지고 장기 선발에 몇 번 도전하다보면 7~8년은 순식간에 흐르게 된다. 강원도 모 부대에서 중사로 전역한 오모(37·남)씨는 “열심히 하면 장기 선발이 될 거라 생각하고 했다”면서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는 정말 눈 앞이 캄캄했다. 아이도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싶더라”라고 호소했다. 일반적으로 부사관이 임관하는 나이는 20대 초중반이다. 장기 선발을 꿈꾸며 군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된다. 장기 선발에 성공하면 괜찮겠지만, 오씨 사례처럼 30대 중후반에 전역하게 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한민국은 군인 출신이 우대받는 사회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군대를 기피하는 시선이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역자에 대한 일자리 취업 교육 등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가 있긴 하지만, 군에서 굳어진 생활·업무형태는 새로운 문화에 맞춰지기 어렵다. 다른 부대에서 부사관으로 중사로 복무하고 전역한 황모(31.남)씨도 “20대를 전부 군에서 보냈다”며 “새로운 걸 시작하려니 잘 안 되더라.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희생해 나라에 헌신한 부사관들이 취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애초 신규 부사관 선발 당시부터 장기 복무에 필요한 인원만큼만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혹은 사병과 같은 의무복무기간을 적용, 그 기간이 지나 군 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경우 전역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육군은 장기선발 비율 높이고 있어

A씨는 이러한 복무 형태에 대해 “고용안정은 필수라고 본다”며 “부사관들의 장기선발 전환은 너무나도 필요한 부분이자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부분이다. 가족인 해군부사관 역시 명절과 주말에 상관없이 국가에 헌신하고, 당직비 등이 없더라도 국가에 대한 헌신과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정보공개를 통한 부사관들의 장기 선발률은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국가의 2/3의 젊은이들이 버려지고, 해군부사관 여성의 경우 4/5의 젊은이들이 버려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군도 부사관의 숙련된 전투력 발휘 여건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육군은 ‘대량획득-대량손실’의 비효율적 인력 수급 방식에서 벗어나 ‘소수획득-장기활용’ 형태의 인력구조로 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사 인원을 적게 선발하고, 장기복무 선발률을 확대해 우수한 소수 인원을 장기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육군 측은 “인구절벽 시대 도래에 따른 가용 병력자원 급감과 병 복무 기간 단축, 병사 봉급 인상 및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초급 간부 획득 여건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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