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쯤이면 국회의원 회관 의원실마다 주소 정리에 바쁘다. 국회의원들이라고 명절에 선물을 받기만 하지는 않는다. 국회의원들도 다가오는 추석에 선물을 보내야 할 곳이 많다.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받는 일보다 보내는 일에 더 신경을 쓴다. 당 지도부나 소속 당 의원들은 기본으로 선물을 보낼 명단에 오른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에는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지역 유지들을 가장 먼저 챙긴다. 목사나 신부와 같은 종교지도자, 주민자치위원장, 재개발 사업조합 조합장,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비롯해 지역의 당 원로들까지 빠짐없이 챙긴다.

일부 의원들의 경우는 지역의 크고 작은 단체마다 과일 한 상자라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선거를 1년 앞둔 올 해 같은 경우는 더 신경을 쓰는데 선물 보내기는 선거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이뤄진다. 명절 선물은 과하게 되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 지역에서 일하는 보좌진이 직접 실어 나르는 경우가 많다. 다들 하는 일이라 안 챙기면 나중에 누구는 보냈는데 누구는 안 보내서 서운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정치인들이 명절에 선거법을 의식해서 선물을 작전하듯 조용히 돌리는 풍경이 아름답지는 않다.

국회의원 회관 1층에는 의원실별로 택배를 수령하는 곳이 있는데, 의원실에 보내지는 추석 선물은 이곳에 쌓였다가 각 의원실에서 수령해 간다. 매년 언론에서 높이 쌓인 선물꾸러미들을 찍어 비판 기사를 내보내는 빌미를 주는 곳이다. 이곳은 명절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붐빈다. 국회의원 회관에는 300개 의원실이 있고 명절이 아니라도 의원실에 보내지는 택배량이 꽤 많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300개 의원실에서 사과 상자 하나씩만 받아도 300개의 사과상자가 쌓이고 당연히 그럴듯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6년 제정된 이후에 국회의 명절 선물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일부 의원들은 아예 선물이 들어오는 것을 거절한다. 김영란법의 취지를 존중하고 문제의 소지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이 상한선이다. 국회의원은 직무연관성이 없다는 전제 아래 5만 원 이하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법적 제재가 많고 주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터라 아예 안 받겠다는 의원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의원실마다 들어오는 선물의 수량은 의원의 선수나 상임위가 어디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중진 의원의 경우에는 워낙에 네트워크가 폭 넓다보니 여기저기서 인사하려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다. 초선, 재선 의원도 물 좋다는 국토위, 산업위, 정무위 같은 곳을 상임위원회로 두고 있는 의원실은 선물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중진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국방위, 외통위의 경우에는 산하기관도 별로 없다 보니 이런 곳에 초, 재선 의원이 밀려 온 경우에는 명절에 선물 하나 구경 못해 봤다는 푸념을 하는 일도 생기곤 한다.

의원실에 들어오는 선물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이 보내오는 선물이다. 대통령이 매번 명절마다 각계에 보내는 선물은 여러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다 보니 세심하게 각 지역특산물 등으로 준비된다. 의원실로 들어오는 선물을 따로 챙기지 않고 보좌진에게 나눠주는 의원도 대통령 선물만큼은 챙겨간다. 고급스러운 포장과 대통령 내외의 글이 담긴 인사장, 홀연하게 찍혀 있는 봉황마크는 아무래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보내는 선물의 각별함은 나라가 일본 문제로, 법무부장관 후보자 문제로 시끄러워도 퇴색하지 않는다.

곧 추석이다. 그 전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고, 아마도 청문회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적 공방은 더 격화되고 법무부장관 임명 문제는 추석 차례를 치르는 집집마다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상황에서 정치권이 각 가정에 배달하는 선물이 앞날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겨우 나라를 두 조각 내는 생떼와 고집이라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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